[경제칼럼] 선진국의 조찬문화와 투명경영

입력 2011-07-13 07:54:43

수년 전 미국 델라웨어에서 듀폰(Dupont)사 회장과의 조찬 미팅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오전 7시 30부터 시작되는 조찬 투자 상담이었는데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목도했다. 필자는 행사 진행을 위해 서둘러 행사장으로 나가면서도 좀 더 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 회장은 무려 30여 분이나 일찌감치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조찬에 참석하는 우리 투자사절단의 실무 직원에게까지 일일이 악수하고 명함을 건넸다. 우리는 이례적일 만큼 극진한 예우를 받은 것이다. 빵과 소세지로 시작된 조찬이었지만 시간에 딱 맞추어 나타난 우리가 오히려 미안해 할 정도가 되었다.

또 다른 CEO와의 조찬 모임도 특이했다. 경기도지사 일행이 투자유치를 위해 찾아간 곳은 미네소타주에 있는 3M사였다. 이번 조찬 상담은 호텔이 아닌 3M사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아침 메뉴는 샌드위치와 커피, 오렌지 쥬스가 모두였다. 우리 모두는 ㄷ자 모양으로 둘러앉았으며, 직접 브리핑을 했던 회장은 가운데 자리에 앉지 않고 브리핑하기 쉬운 모서리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회장이라고 해서 별도의 테이블을 만들거나 고급스런 의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3M사 회장은 전용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막강한 신분의 자리에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도 모서리에 앉아서 실무자처럼 겸손하게 브리핑을 했던 것이다.

이들 두 기업 CEO의 조찬 상담 모습에서 우리는 서구의 실용성과 겸양 정신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미팅은 이처럼 만찬보다는 조찬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최고의 예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고 자리 배치나 의자의 격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조찬에서는 비싼 와인을 먹을 일도 없으니 비용도 적게 든다. 이른 아침 맑은 정신으로 만나서 담소를 나누니, 상담도 더 깔끔하게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조찬 면담이 잡히면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양에는 왜 이러한 조찬 모임 문화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을까? 단지 능률이 오르고 실용적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공짜 문화가 거의 없고 비용이 발생하면 가급적 더치페이로 해결하는 생활습관도 일조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의 민간기업은 좀 다를지 몰라도 공공기관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섭외성 예산이 적은 편이다. 그러니 저녁에 유흥주점 등에서 흥청거릴 일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일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처리한다. 반드시 만나야할 사람은 낮에 만나거나 조찬 모임으로 대신한다. 저녁시간은 가족을 위해 우선 배려하기 때문에 업무를 위한 저녁 행사를 잘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쁜 CEO들에게 자연스레 조찬 문화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이러한 실용 조찬 문화가 생활화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업무상의 일반 회식도 공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례로 메사추세츠주 주정부 사무실에서 그쪽 공무원과 3년간 함께 근무할 때의 일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그 곳에 사무실을 얻어 근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정부 경제부처 고위 공직자의 송별을 겸하는 점심 회식이 있었다. 약 40여 명이 참석하였고 이태리 식당에서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석별의 정을 서로 나누었다. 물론 선물 증정이나 감사패 전달도 없었거니와 거창한 이임사도 없었다. 그저 옆자리 앉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그런 일상의 점심과 같았다. 한쪽에서는 와인을 별도로 시켜 마셨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총무라는 사람이 나보고 약 17달러50센트를 내라는 것이었다. 와인을 안 마신 사람은 14달러인데 나 같이 와인을 마신 사람은 3불50센트가 추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한 조직의 장이 떠나는 회식자리인데도 예외 없이 개인 부담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야속한 것 같지만 미국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일반 회식 문화는 어떨까? 비약적일지는 모르지만 공금에 너무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 부담 문화가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공금에 의존하는 회식이 많은 것 같다. 공금 쓰기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투명 경영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최근 공공기관 등에 도입된 클린카드제도로 인해 유흥주점 등에서 접대하는 일은 막아 놓았지만 그래도 과도한 저녁 접대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도 서양처럼 만찬 대신 경비가 적게 드는 조찬 모임을 더욱 활성화 시키면 어떨까? 요즘 대구 경북에서도 외국기업 투자유치와 국책사업 유치를 위해 외지인을 초빙하는 일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이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조찬 면담을 더 많이 가진다면 섭외성 경비 과다사용이라는 구설에 오르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김태형(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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