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모래밭 아이들'의 저자인 일본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1934~2006)는 학교 현장을 소재로 한 다양한 저술로 유명하다. 일평생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그는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아이들의 시각에서 되새기는 작업을 해왔다. 그가 쓴 책들에선 모나고 서툰 아이들을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변모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래서 그가 쓴 '모래밭 아이들'은 권장 도서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1974년 지은 첫 작품이다. 이 책에는 쓰레기 수거장 주변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데쓰조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꾀죄죄한 용모에 말수 없는 데쓰조는 친구들로부터 '더럽다'며 손가락질당하기 일쑤다. 유일한 취미라야 '파리 수집'인데, 혐오감만 더 불러일으킬 뿐이다. 파리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실험실 개구리를 패대기쳐 선생님에게 매질을 당할 정도다. 담임인 젊은 여교사 고다니도 처음에는 이런 데쓰조에게 기겁하며 다가가기를 꺼린다. 하지만 데쓰조의 집을 찾아가고, 그의 할아버지를 만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데쓰조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수십 종의 희귀 파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곤충학자 못지않은 지식을 쌓은 것이다. 파리를 그릴 때는 아주 세세한 묘사까지 해낸다. 그런 데쓰조의 재능을 발견해 낸 것은 끈기 있게 아이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감싸안은 교사의 애정이었다. 아이는 결국 '선생님이 좋아요'라며 서툰 글로 보답한다. 아이도 교사도 그렇게 한 단계 성장한다.
이쯤에서 우리의 교육계를 되돌아본다. 만일 대한민국의 어느 교실에서 데쓰조와 같은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면 씁쓸함을 떨치기 어렵다. '평가지상주의'에 갇힌 교실에선 이런 재능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12일로 다가온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명 일제고사)를 둘러싸고 교육계가 또다시 시끄럽다. 교육당국에선 '학력 점검'이라는 명목이라고 하지만, 한쪽에선 '파행 교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교직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초교에서는 수업 시간 중에 성취도평가 기출문제를 풀게 하거나, 아예 0교시를 만들어 자습을 시킨다고 한다. 자습시간에 문제를 풀게 하는 것도 모자라 하교 후 집에까지 가서 문제지를 풀어오는 숙제를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문제풀이가 최적이긴 하지만, 과연 '이것이 교육적인가?'하는 견지에서 최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교사들의 부담은 말도 못할 정도다. 교장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구시 교육청이 발표한 '학교장 다면평가제'를 살펴보면 올해부터 학교장의 성적을 5등급으로 분류해 본인에게 통보한다고 한다. 학교장의 실적 평가에는 학력향상도가 20점을 차지한다. 학교 경영 만족도, 주요 교육활동 추진 상황, 청렴도 등 다른 요소가 많지만 학력향상도는 수치로 단번에 비교된다는 점에서 그 20점이 가진 힘은 매우 강력하다. 말할 것도 없이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는 학력향상도의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물론 평가는 매우 중요한 도구다. 정확한 평가가 있어야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메울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선 좋은 평가를 받아야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그런 대학을 나와야 사회적으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서서히 변해야 하지 않을까.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본래 '교육적'이라는 말 자체가 미래지향적인 게 아닐까. 남들이 쳐주지 않는, 숨겨진 아이들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그런 평가도구는 없는 것일까.
최병고기자(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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