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돔배기

입력 2011-07-05 11:05:51

경북 안동(安東) 가난한 양반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유붕(有朋)이 자원(自遠)방래하니 불역낙호(樂乎)인데 손님맞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손님이 오시면 사랑채에 모시고, 먼저 술상부터 차려야 한다. 밥상은 그 다음이다.

때는 겨울. 그래도 명색이 양반집인데 술상에 나물 안주만 올릴 수는 없을 터, 씹히는 안줏거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소고기'돼지고기 안주는 언감생심이던 시절,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돔배기'다. 돔배기는 상어 고기의 경상도 사투리로 밤'대추처럼 이 지역에서는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일등 제수품이다.

제사 지내고 난 큼직한 돔배기를 먼저 소금에 푹 절인다. 그리고 깨끗하게 말리면 고기가 딱딱해진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돔배기 안주가 된다. 이것을 손님 술상에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술상에 올라온 돔배기는 무척 짜고 딱딱하기 때문에 손님이 젓가락 대기가 곤란하다. 그대로 남길 수밖에 없다.

손님 입장에서는 비록 '눈요기'용이지만 일단 돔배기 안주가 올라왔으니 서운하지는 않을 터이고 주인 입장에서도 생선 안주를 올렸으니 어느 정도 체면은 살린 셈이다. 대접하는 쪽과 대접받는 쪽 모두 기분 상하지 않고 술잔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부 어려운 동네에서는 겨울철, 이런 돔배기를 서로 빌려가며 손님을 대접했다고 하니 양반댁 지혜가 놀랍다. 돔배기는 이렇게 경상도 정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제사를 지낸 후 음복(飮福) 안주로 간장에 찍어 먹는 돔배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입에 달라붙는 쫄깃한 맛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값싸고 콜라겐이 풍부한 상어 껍데기는 막걸리와 기가 막히게 궁합이 맞는 안주다.

이런 돔배기가 또 도마에 올랐다. 환경부가 영남 지역 주민 5천143명을 대상으로 상어고기 섭취에 따른 혈중 수은 농도 변화를 조사'관찰한 결과, 평균 혈중 수은 농도 값이 상어고기를 먹는 사람이 먹지 않는 사람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해 어종인 상어에 수은이 많이 함유됐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밝혀내야 한다. 지난해에도 돔배기 때문에 수은이 과다 섭취됐다며 법석을 떠는 바람에 '영천 돔배기'가 타격을 입었다. 과학적인 수은 섭취 가이드라인이 하루빨리 제시돼야 할 것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