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사라진 부산 해운대… 개발 후유증 몸살

입력 2011-06-25 07:34:25

50층 넘는 초고층빌딩에 눌려…동백섬·달맞이고개 옛모습 잃어

해운대의 고층 아파트 야경. 불꺼진 곳들이 많다.
해운대의 고층 아파트 야경. 불꺼진 곳들이 많다.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사장 풍경. 해마다 모래 유실량이 엄청나 부산시는 매년 수억원을 들여서 모래를 구입해 해수욕장에 넣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사장 풍경. 해마다 모래 유실량이 엄청나 부산시는 매년 수억원을 들여서 모래를 구입해 해수욕장에 넣고 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으론 골병이 들고 있다'. 부산을 비롯한 국내 대도시들이 개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들 개발사업은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국제도시로서의 위용을 갖춰 보자는 데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욕만 앞섰을 뿐이다. 개발 명목으로 초고층 빌딩들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지만, 도시의 격을 높여 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부산, 대구, 인천 등지에는 초고층 고급 주거시설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 기반이 취약해진 데다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입주 지연 사태가 불거지기도 했다.

대구는 범어동 일대를 뉴욕의 맨해튼처럼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금융 및 사무 1번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초고층 주거공간이 들어선 것을 제외하곤 내세울 만한 건물이 없다. 범어동 지하철역 상가도 텅 비었다. 뭘 할지 고민이다.

부산 해운대로 향하기 전 만난 부산시 건축주택담당관실 하성태 담당자는 "부산 해운대구 개발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시에서 여러 방법을 동원해 교통문제나 자연훼손 등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센텀시티, 마린시티의 현실은?

해운대 해수욕장의 오랜 건물인 조선비치호텔 9층에 올라가 해운대를 둘러봤다. 분명 눈이 부실 정도로 변했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전부였고, 주변 건물이나 아파트들이 작게 보였던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는 해운대 해수욕장이 바다와 고층 건물들 사이에 있는 거대한 모래판처럼 보였다.

해운대 주변을 살펴보니 20∼30층 빌딩들은 대나무밭에 있는 대나무처럼 널려 있었고, 50층 안팎의 초고층 빌딩들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오히려 이 빌딩 숲들이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 달맞이 고개 등 옛 풍경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잇따라 들어서는 고층 빌딩들은 그 개발속도를 짐작하게 한다.

해운대 개발의 중심인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는 아파트 분양 물량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만, 계약이 어느 정도 이뤄질지 우려되고 있다. 부산시 한 공무원은 "수도권 등의 돈 많은 사람들이 별장 삼아 이곳 아파트를 사지 않는다면 부산경남의 자체 수요만으로는 분양물량을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곳에 입주하는 이들은 관리비가 많은 드는 큰 아파트보다 작은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개발 열기로 인해 땅값이 폭등했다. 땅 소유자들은 불로이익으로 부자가 됐지만, 개발과정에서 집 없는 서민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한 주민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졸부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곳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손자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벤츠나 BMW 등 최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승문(39·회사원) 씨는 "부산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모습에는 동의를 하지만 난개발로 인해 인간 냄새가 사라진 빌딩 숲을 만드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은 후세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초고층 빌딩으로 인한 문제, "백약이 무효"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때 해당 지자체와 개발업자들은 서로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도시를 위한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놓는다. 인구 300만 명 안팎의 대도시다운 스카이라인 형성이라는 명분도 선다. 업자들은 어느 정도 교통문제 대책도 마련하고, 도심 공원이나 부대 시설도 조성해 시에 기부채납한다. 하지만 막상 건설이 시작되면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난다. 환경파괴나 교통체증이 발생해도 나몰라라는 식이 된다.

이미 해운대는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허가된 초고층 건물에는 교통영향평가가 약식으로 통과되거나, 해당업자에게 '교통대책을 마련하라'는 조건을 달아 통과시키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4배에 이르는 해운대 관광리조트 건물도 건축 계획 심의를 통과했다. 이 건물은 108층 1동과 87층 2개동으로 구성된 초고층이다. 이 건물이 들어서는 곳은 옛 한국콘도 부지. 사실상 해수욕장 바로 옆에 공룡같은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다. 부산의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특혜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부산시는 또 수십 년간 해운대 해안 도로 주변을 중심 미관지구(건축물 높이 50m로 제한)로 지정했으나, 이를 일반 미관지구로 바꿨다.

개발로 인해 동백섬에서 아름드리 동백나무도 상당수 사라졌다. 뒤늦게 동백나무 묘목을 키우는 등 동백섬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옛 경관을 되찾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천도 같은 고민, 대구는 예외인가?

대구·부산·인천은 뉴욕의 맨해튼,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푸둥지구와 같은 초고층 빌딩 숲 도시를 꿈꾸며 대규모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맨해튼, 홍콩, 상하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수백 년에 걸쳐 국제적 교류가 있었고, 도시의 자생적 능력도 충분한 시점에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들었고, 외자 유치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대한민국 제2·3·4의 도시는 멋진 청사진을 그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는 아직도 수천억~수조원대의 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형건설사들이 한 지구씩 꿰차 공사를 하고 있으며, 완공된 아파트 단지도 많지만 아직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투자 의사를 밝혔던 외국기업은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하고도 본 계약을 주저하고 있다. 공사가 시작됐는데도 후속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유명대학의 송도 국제캠퍼스 시대도 연기되고 있다.

대구 역시 초고층 아파트(주상복합)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는 비즈니스 용도의 빌딩 대신 50층 안팎의 초고층 주거공간이 들어서면서 어색한 도심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들 주거공간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장기 미분양은 물론이고 계약자들이 입주를 제때 못하는 바람에 고민거리가 되기도 했다.

대구시의 도시개발 관련 담당자는 "개발업자의 사업계획을 무조건 난개발로 보지는 않는다"며 "부산 해운대나 인천 국제도시의 장단점을 잘 검토해 도시개발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부산·이영철기자 busan5161@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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