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그러다 휘청했지… 전문연구단체 아쉬워
3년째 흑자를 내고 있는 A섬유회사는 주변으로부터 벌써 10여 차례나 집기를 늘리라는 권유를 받고 있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투자금은 충분하지만 시설과 연구 중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 대표 이모 씨는"섬유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무턱대고 집기를 늘렸다가는 예전처럼 갑작스러운 불황에 대처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연구에 투자하려니 이 역시 자료가 없어 기간과 금액을 정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10여년 만에 활황을 맞이한 대구경북 섬유업계가 투자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공장증설과 집기구입 등 다양한 투자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미래 시장을 예측하기 힘든 탓이다.
1980~90년대와 달리 섬유 업계를 리드할 선도 기업이 부재하고 지자체나 관련 연구기관에서도 뚜렷한 미래 전망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섬유업계는 최근 급격한 성장세로 2000년대 초반까지 매출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28억5천만달러를 수출해 2000년 수준까지 회복했으며 올해 수출액은 30억8천만달러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올해 1, 2월 대구경북 섬유 수출액은 4억7천600만달러로 전년 동기(3억9천100만달러) 대비 21.8% 증가했다. 2009년 11월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
과감한 투자로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과도한 투자로 실패를 경험했던 터라 어느 누구 나서서 결정을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지역 섬유는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하게 투자를 했다가 IMF가 터지면서 줄도산한 경험이 있다"며 "이와 함께 수시로 변하는 세계경제구조 때문에 섬유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투자를 꺼리는 이유다"고 밝혔다.
한 섬유회사 사장은 "지역 자동차부품회사가 공장 증설 등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현대'기아자동차라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미래 시장 성장에 대해 예측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서다"며 "하지만 지역 섬유업계는 산업을 이끄는 선도기업이 뚜렷하지 않아 선뜻 투자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조사가 미래 섬유의 갈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계명대학교 송규문 교수(통계학과)는 "불투명한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지역 섬유 산업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조사를 바탕으로 한 성공 사례가 수없이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 소주 '처음처럼'은 여성 음주율이 1995년 15.3%에서 3년 만인 1998년 32.7%로 2배 이상 급증했다는 점과 2000년대 이후에도 비슷한 비율을 유지한 점에 착안해 여성을 타깃으로 한 순한 소주 '처음처럼'을 판매했다. 미래 예측 덕분에 '처음처럼'은 2006년 2월 출시돼 2월까지 5년 동안 국내 누적판매량 18억 병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에 도달했다.
섬유업계 조사에 대해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측은 "2007년까지는 지역 섬유회사의 집기에 대해 조사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중단됐다"며 "최근 효성과 코오롱 등 대기업이 아웃도어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고 앞다퉈 신소재 연구에 나서는 것처럼 우리도 하루빨리 지역 섬유산업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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