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이 생존에 필요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어떨까. 단순히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까? 그들은 생각이라는 것이 없고, 그래서 잠이 오면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엎어져 자고, 배가 고프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우걱우걱 먹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을 넘어 앞뒤를 생각하는 것일까.
칸트 철학 연구의 권위자인 라인하르트 브란트 교수는 '동물도 생각을 하는가'라는 책에서 '동물은 당연히 생각하지 못한다. 인간처럼은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동물도 두뇌를 사용하지만 사고나 판단 같은 지능 활동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며, 동물은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동물의 두뇌는 그저 작동만 할 뿐이라는 것이 하나이고, 동물 역시 생각을 통해 자기 삶을 이끌어간다는 인식이 다른 하나다. 반려동물로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생각은 어느 쪽인가? 반려동물 1천만 마리 시대인 우리나라에서 사뭇 궁금한 대목이다.
인지생물학자인 프리데리케 랑게는 동물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 '동물 지능 실험실'을 열었다. 그의 실험은 대학교 건물 안에서뿐만 아니라 야생의 정글과 밀림에서도 이어졌다. 개와 늑대를 비롯해, 맹거베이 원숭이, 케아앵무, 미어캣 등 다양한 동물이 실험에 초대됐다. 그 결과 동물들은 협력하고 경쟁하고, 배신하며, 상대방과 갈등을 일으키고, 규칙을 발달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생 침팬지가 원숭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침팬지는 언제 파트너가 필요한지, 계획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협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창한 밀림 속에서 원숭이가 도주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침팬지들은 더욱 밀접하게 협력했다. 또 몰이꾼 침팬지들은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원숭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몰아갔고, 길목지기 침팬지는 이를 기다렸다가 낚아챘다. 좀 더 어려운 역할을 맡은 침팬지가 더 많은 고기를 분배받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더 나아가 어떤 종류의 사냥에, 어떤 종류의 행위에 어떤 상대가 더 능률적인 협력자인지도 경험을 통해 분별할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언제나 유능한 협력자를 선호하는 행태를 보였다.
까마귀는 다른 동물이 사냥하고 남은 잔해를 주로 먹고 산다. 곰이나 늑대 혹은 사람이 동물을 사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 떼가 몰려든다. 이때 까마귀는 먹이를 훔치려하고, 사냥꾼은 빼앗기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이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까마귀들은 먹이를 숨겨놓고 나중에 먹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다른 까마귀가 먹이를 숨겨놓는 것을 본 까마귀의 행동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까마귀가 먹이를 숨길 경우 곧 그 먹이를 찾아서 먹지만,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까마귀가 먹이를 숨길 경우 서열 높은 까마귀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 먹이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로 '까마귀는 자기가 훔치려 한다는 것을 상대도 알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신의를 배신하는 동물도 있다.
자리돔은 몸에 붙은 기생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비늘을 제거하기 위해 청소부인 청소놀래기를 찾아가 몸을 맡긴다. 그런데 청소놀래기는 자리돔의 비늘에 붙은 기생충이나 상태가 안 좋은 조직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조직까지 먹어치우기도 한다. 이 속임수는 100초 동안 약 2∼6차례 정도 이루어진다. 고객을 배신하는 것이다. 자리돔 역시 청소놀래기가 속임수를 쓴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청소부들에게 몸을 맡기기 전에 어떤 녀석이 정직한지 관찰하고, 가장 정직해 보이는 청소놀래기에게 몸을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은이는 동물들 역시 무엇을 먹어도 좋은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학습하며, 이를 통해 문화를 형성하고 대물림한다고 말한다. 동물이 오직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아니며, 생각한 다음 적절한 행동양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들은 '누구'인지 묻고, 그들의 모습에 비친 '우리'를 확인한다.
지은이는 1971년 독일 바트피르몬트에서 태어났다. 바이로이트 대학교에서 동물생리학을 전공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맹거베이 원숭이 연구로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24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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