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대신 병 안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박명섭(48) 씨 부부는 꿈을 잃었다. 박 씨는 지난달 뇌경색과 협심증 진단을 받고 매일 좁은 방에서 누워 지낸다. 아내 전창수(48) 씨는 남편 간호 때문에 한 달째 공장에도 못 가고 있다. 조선족인 박 씨 부부는 4년 전 경북 구미에 왔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이들을 한국으로 향하게 했다. "돈 많이 벌어서 빚도 갚고, 딸애랑 같이 살 집도 사고 싶었는데…." 전 씨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만지작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땅
14일 오후 경북 구미의 한 주택가. 갈색 벽돌집이 다닥다닥 들어선 골목길에 회색 콘크리트 건물 한 채가 위태하게 서 있었다. 건물 앞에 널린 빨래가 없었다면 도무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박 씨 부부의 보금자리는 건물 안 16.5㎡ 남짓한 단칸방이다.
2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행어에 걸린 옷 몇 벌, 누렇게 변한 구식 냉장고와 TV, 바닥에 깔려 있는 전기장판이 가재도구의 전부였다. 2008년 방문취업(H-2) 비자를 손에 들고 한국에 온 박 씨 부부에게 한국은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곳이다. 지금까지 체류기간을 두 번 연장해 내년 말이 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은 미래를 위해 겨울에는 칼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푹푹 찌는 월세 10만원짜리 방에 살고 있다. "한국에 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잖아요. 누가 이렇게 될줄 알았나." 전 씨가 가슴을 쳤다.
중국에서도 박 씨 부부는 공장 노동자였다. 중국 길림성 사평시에 있는 금공장에 다니며 광석에서 금 빼내는 일을 했다. 한 달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1천200위안(한화 20여만원).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중국에서도 집이 없었어요. 큰언니집에서 얹혀살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습니다."
고혈압과 심근경색 증상이 있었던 박 씨는 자신의 몸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돈 때문에 병원 치료 대신 약만으로 버텼다.
◆무너진 '코리안 드림'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인에게 시집간 조카가 연락을 해왔다. "자신이 초청할 테니 방문취업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오라"는 것이었다. 둘이 함께 일하면 매달 2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부부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 꿈은 2008년 이뤄졌다. 경북 구미에 터를 잡은 부부는 각각 다른 직장을 잡았다. 박 씨는 찜질방 보일러실을 지키는 일을 했고 전 씨는 섬유공장에 취업했다. 출근 시간도 달랐다. 박 씨는 오후 8시에 출근해 하루 12시간씩 보일러실을 지켰다. 아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했다. 부부는 한 달에 220만원을 벌어 월급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진 빚을 갚고 일부는 생활비로 썼다.
하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13일 저녁 전 씨가 문을 열자 박 씨가 방에 엎어져 있었다. "방에 불도 안 켜놓고 가만히 누워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불러도 대답이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박 씨는 다음날 인근 병원에 가서 MRI 검사를 받았다. "뇌경색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도 있었죠?" 박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구가 없는 삶
박 씨는 얼마 전부터 병에 걸렸다는 신호가 왔다. '참외'를 보고 '사과'라고 했고, 아내가 이상하게 쳐다보면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리에서만 맴돌고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던 박 씨의 말이 몸에 이상이 생긴 증상인 줄은 몰랐다.
박 씨는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불안정성 협심증'이라는 진단을 추가로 받았다. 심장으로의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서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줄어드는 협심증은 '불안정성'이 더 위험하다.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악화돼 갑자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탓이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1주일치 입원비와 시술비로 500만원을 지불했다. 남편 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전 씨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한국에 있는 조카한테 손을 벌였다. 병원 측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며 "심장 수술과 뇌혈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예상 진료비용은 최소 1천만원이다.
부부는 지금 수입이 전혀 없다. 통장에 찍힌 잔고도 200여만원뿐이다. "한국에 오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우리 남편 죽으면 어떻게 해요." 4년 전 중국을 떠날 때의 설렘은 이제 절망으로 바뀌었다. 여권을 손에 쥔 전 씨가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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