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풀 자라고 다소 어수선 그래도 이런 느림이 매력…민간 힘으로 성공적 정
헤이리(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는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문화비즈니스맨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이 1998년 50만㎡(15만여 평) 부지에 자연과 사람, 문화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로 건설하기 시작한 마을이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인들의 힘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다. 도로, 도시가스 등 마을 인프라 역시 모두 이 마을 주민들의 힘과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각자가 자신의 집을 짓되 공간의 60%는 문화공간(미술, 음악, 문학, 건축, 사진, 공연, 박물관, 문화관, 공방, 서점 등)이어야 하고, 건축물의 높이는 12m 이하로 제한된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높이가 필요한 공연장은 지하로 땅을 파서 높이를 확보했다. 담을 쌓아서는 안 되며 인위적 재질의 페인트를 칠해서도 안 된다. 집이 곧 미술관이고 카페고 공연장이다. 마을 전체의 75% 이상은 자연 그대로 남겨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5월 14일부터 6월 12일까지 열린 헤이리 '제3회 아트로드 77아트페어 2011'에는 대구의 젊은 화가 15명이 특별전 '대구의 젊은 시선'으로 초청됐다. 한국예총 대구시연합회 산하 예술소비운동본부는 지난주 헤이리를 찾아 대구의 '젊은 미술'을 관람하고 헤이리 예술마을도 둘러보았다.
◆ 헤이리는 느리다
헤이리의 첫인상은 '유명세'와 달리 '어설프다'였다. 정리정돈과 일사불란에 익숙한 기자의 눈에 이 집, 저 집, 이 공간, 저 공간은 비능률적으로 보였다. 풀과 나무는 정돈되지 않아 지저분해 보이기도 했다.
헤이리는 아직 건설 중이다. 320채의 목표 건축물 중 현재 163채가 완성됐다. 1998년 창립총회를 개최했고, 2004년 집을 짓기 시작했던 점을 고려하면 속도가 늦다. 게다가 곳곳의 빈터는 잘 깎은 잔디가 아니라 잡풀이 자라고 있었다. 야채와 꽃씨를 뿌리기 위해 파놓은 땅은 헐벗은 구릉이었다.
그러나 이 늦음이 바로 헤이리가 추구하는 삶과 예술의 방식이다. 헤이리는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 마을 가운데 있던 늪은 그대로 늪이고, 거기서 시작된 냇물은 마을이 생기기 전이나 생긴 뒤에나 여전히 원래의 속도로 흐른다.
널따란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건축물을 짓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인 각자가 살고 싶은 장소를 정하고, 그 장소에 따라 길을 만든다. 길 먼저 내고 건축물을 짓는 현대적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터를 잡고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목길이 형성됐던 옛날의 길과 같은 방식이다.
◆헤이리는 자연이다
헤이리의 모든 건축물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탄생하고 성장하고 늙는다. 자연친화 소재인 코르텐강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녹이 슬어간다.(그러나 부식 방지 자재다) 나무와 이끼로 외벽을 바른 집은 자연과 호흡하며, 나무 풀과 함께 살아간다. 건축물 역시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가능하면 타고난 생명 그대로 살다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집들은 마을 부지 내 산과 들, 계곡과 늪, 하천과 나무를 기준으로 지었다.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거나 산을 깎거나 계곡을 메우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래서 집들은 숲 속 혹은 구릉에 놓여 있고, 그 집으로 이어지는 길들은 곡선이다.
금산 갤러리는 오래된 굴참나무를 베어내지 않기 위해 갤러리 외벽에 12개 구멍을 내 가지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작은 냇물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를 5개나 건설했다.
헤이리는 50만㎡ 공간에 동네 입구가 9개다. 그러니 마을은 앞과 뒤, 중심과 변방이 따로 없다. 다만 마을 중간의 늪은 어느 입구에서 들어오든 가운데에 위치한다. 원래 거기 있던 늪이고,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으니 사람이 뭐라고 입댈 것은 없다.
헤이리는 예술인과 예술비즈니스 사업가만 입주할 수 있다. 입주를 원할 경우 이사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며, 토지 매입 시 사업계획서를 비롯해, 문화예술로 헤이리 마을에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니까 헤이리는 유원지나 예술 동호인 집적지가 아니라 문화예술 생산지이자 향유지이며 주거공간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헤이리=경기도 파주 지역 민요에서 나온 말로 '얼씨구' '지화자' '좋다'는 뜻의 의성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