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에 취업준비 바빠 시위참석 못해요"
반값 등록금 문제로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동안 잊혀졌던 촛불도 다시 켜졌다. 지난달 21일부터 서울에서 시작된 일부 학생들의 촛불집회는 이제 넘실넘실 파도가 되어 전국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연일 들끓고 있는 인터넷과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여론의 아우성에 비해 지난 21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서울의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학생'시민들의 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구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10일 2'28 공원에서 촛불집회를 준비했던 대구경북대학생연합회 측은 "50~150명 정도의 시민이 동참할 것 같다"며 "집회를 준비하긴 하지만 늘 참여 인원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늘 누군가는 행동에 나서는 반면, 누군가는 마음의 응원만을 보낼 뿐 선뜻 거리로 광장으로 뛰어나와 동참하지는 못하는 현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젊음
김인(계명대 한국어문학과 3년) 씨는 3일부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첫날인 3일은 계명대 바우어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다 대학본부와 총학생회 관계자들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고, 주말과 공휴일로 이어지는 연휴기간에는 동성로 한복판에서 따가운 햇볕을 받아가며 1인 시위를 계속했다.
5일 오후, 시험을 앞둔 바쁜 시간에도 "공부를 핑계로 마음먹은 일을 외면하기는 싫었다"며 2시간 동안 나홀로 시위를 벌이는 그를 옆에서 지켜봤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날 하루 서명에 동참해 준 인원만 대략 500여 명. 사람들은 이런 그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고, 박수를 보내고,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1인 시위를 벌여도 그의 곁에는 누구 하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찌보면 외롭기 그지없는 싸움이다. 그래도 김 씨는 "누군가는 앞장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됐다"며 "그나마 격려해주고 가는 많은 시민들이 있어 위안이 된다"고 씨익 웃었다.
김 씨는 "주위 친한 친구들조차 내가 이런 문제를 거론하면 '또 골치아픈 이야기를 한다'며 싫은 내색하기 일쑤라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경쟁사회 속에서 학생들이라고 마냥 여유있게 지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가 '별종'이다. 갈수록 개인주의적이 되어가는 젊은이들 속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고민 외에 시대고민이라는 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는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인권운동을 하는 부모님 덕택이 큰 것 같다"며 "세상은 그냥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바뀌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올해 대구경북 대학교 중 유일하게 등록금이 2.8% 인상된 영남대에서는 봄부터 꾸준히 등록금 인하 투쟁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5월 축제를 앞두고는 1인 시위로 시작해 둘째 날은 2명, 셋째 날은 4명 등의 방식으로 제곱씩 학생수를 늘려가 10일째 되는 날에는 512명의 학생이 함께 등록금 인하 시위를 벌이는 '10일간 영대의 무한도전'이라는 행사를 벌였다. 김태우 영남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방식으로 기획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과연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나와줄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결국 성공했다는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늘 총대를 메고 앞장서야 하는 입장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태우 씨는 "총학생회 일을 맡는다는 자체가 자신을 희생해 나 자신을 위한 고민이 아닌 학생 모두를 위한 고민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겠냐"며 "다만 늘 고민이 되는 것은 어떻게 침묵하고 있는 다수를 끌어내 학생들의 의견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부분"이라고 했다. 인터넷이나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의견을 표출하는데 익숙한 젊은이들이지만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는 일은 오히려 더 외면하는 세대인 탓이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젊음
하지만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반값등록금 사태를 지켜보는 평범한 학생들의 마음은 양면적이다. 행동으로 나서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자신의 앞날부터 챙겨야 한다는 이기적인 당위성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최모(22'영남대 사범대) 씨는 포항에서 올라와 현재 학교 인근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하면 한 해에만 1천80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한 달 월세 30만원과 60만원의 생활비, 그리고 연간 700만원을 넘어서는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 최 씨는 생활비 만이라도 혼자 벌어서 사용하려 여기저기 뛰어다녀 보지만 그가 버는 돈은 50만원을 넘어서기 어렵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고 있지만 과외 자리는 몇 달을 가지 못하고 바뀌기 일쑤인 것이다. 최 씨는 "영세 가내수공업을 하고 계신 아버지께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부담감을 넘어서 죄스럽다는 생각뿐"이라며 "이제 임용고시 준비도 서둘러야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음만 쫓긴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그에게 등록금 집회는 '남의 일'일 뿐이다. 그는 "반값등록금이 되기만 한다면 학비 부담이 조금은 줄어들겠지만 빨라야 내가 졸업한 뒤의 일이 될 뿐 아니겠냐"며 "고작해야 인터넷에 댓글 다는 것이 고작인 내가 소심하고 비겁해 보인다는 생각도 하지만 이것이 내 현실"이라고 허탈하게 말했다.
사실 상당수의 학생들은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데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선뜻 행동에는 나서지 못한다. 정말 가난한 학생들은 당장의 벌이를 위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뛰느라 밤잠까지 줄여야 할 처지인데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학점과 토익성적, 각종 스펙관리 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대학생활을 보내야 하는 탓이다.
더구나 2년 전 촛불집회 때 정부가 보여준 강력진압 방식은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심어줬다. 임모(여'계명대 언론영상학 4년) 씨는 "1인 시위나 광화문 집회 등을 보면서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막상 실천으로 옮겨지지가 않는다"면서 "시험이 코앞이고 취업도 앞두고 있는 등 스스로 여러 핑계를 대 보지만 그 중 큰 요인 하나는 자칫 잘못했다간 내가 불이익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 촛불집회 때 정부의 강경 진압이나, 최근 광화문 학생 연행 사태 등을 보면서 나 역시 나섰다가는 화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고백한다면 나는 못나서지만 누군가가 대신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면서 "총학생회의 경우 학생들을 대표하는 기관인 만큼 누구보다 등록금 인하에 앞장서줬음 좋겠다"고 했다.
신모(여'경북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 역시 "'촛불집회가 열린다면 동참하겠느냐'고 물어온다면 당연히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지만 솔직한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면 시간이 허락하고 함께해 줄 친구들이 있다면 모를까 내 것을 희생해 참여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연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선뜻 나서겠냐는 것이다. 신 씨는 "모두가 나처럼 '누군가는 해주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을 알지만 이기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기는 힘들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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