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기행] <24> 울릉도 옛길

입력 2011-06-08 07:43:58

머리 들면 울창한 태고 원시림, 눈 아래엔 깎아지른 해안절벽

태하등대
태하등대
내수전 석포마을 옛길은 요즘 최고의 트래킹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내수전 석포마을 옛길은 요즘 최고의 트래킹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도동 행남등대. 행남길
도동 행남등대. 행남길
울릉지도
울릉지도

지금으로부터 250만 년 전 화산폭발에 의해 바닷속에서 땅덩어리가 불끈 솟아올랐다.

지금의 울릉도이다. 해저에서의 지름이 30㎞, 해저로부터의 높이가 3천㎞에 달하는 대형 화산의 일부만이 해면 위로 솟아오른 것이 섬의 모습이다. 면적은 여의도의 25배가량인 72㎢로 동서길이 10㎞, 남북 9.5㎞, 해안선 길이는 56.5㎞에 이른다.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라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어져 어디를 가도 비경이다.

울창한 원시림과 독특한 지형, 화산섬 특유의 생태환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육지와 접근성의 어려움 때문에 뱃길과 육상 교통이 매우 열약하다.

섬지역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는 고속도로처럼 길게 쭉 뻗은 곧은 길이 거의 없고, 해안 절벽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꼬불꼬불 옛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울릉도의 명산인 성인봉(해발 984m)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골짜기를 따라 섬 주변을 둘러싸듯 마을이 형성돼 있다. 이들 마을과 부락을 잇는 옛길은 개척민들의 애환이 묻어 있다. 바다를 끼고 있어 조망권도 탁월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콘크리트 도로가 늘어나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둘레길은 많이 소멸됐다. 하지만 산간마을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들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울릉도 역사

울릉도에 최초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시대 또는 철기시대 전기부터다.

석기시대 때부터 사람이 사용한 지석묘, 무문토기, 갈돌, 갈판 등이 서울대박물관 조사팀의 부분적인 지표조사에서 발견됐지만 고고학적 발굴조사가 절실히 요구된다.

512년 지증왕 13년 신라장군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울릉도가 최초로 문헌에 등장) 기록과 함께 930년 고려 태조 13년 조공한 우릉도(芋陵島) 주민에게 작위를 하사한 기록이 있지만 공도정책(空島政策) 등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물은 적다.

1882년 고종 19년 울릉도 개척령을 반포한 뒤 주민 이주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1900년 광무 4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칭하면서 강원도에 편입했다.

1906년 광무 10년 울도군을 경상남도에 편입했다가 1914년 경상북도로 이속된 후 1915년 군(郡)제를 폐지하고 제주도와 더불어 도(島)제로 변경됐다. 울릉도청(鬱陵島廳)으로, 군수(郡守)를 도사(島司)로 개편하면서 행정, 치안을 총괄해 오다가 1949년 정부수립 후 '경상북도 울릉군'으로 체제를 구축했다.

대표적인 옛길은 내수전 석포마을 옛길과 나리분지 신령수 원시림 숲속길, 황토구미~태하등대 옛길, 도동~행남가는 길 등이 손꼽힌다.

◆내수전 석포 옛길

내수전 석포 옛길은 원시림이 무색할 만큼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해안 절벽, 풍광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유일하게 일주도로가 뚫리지 않은 곳이다.

읍지역 내수전마을과 북면 석포마을을 연결하는 옛길 4.4㎞ 구간은 울릉 일주도로 미개통 구간이다. 올해부터 옛길은 보존키로 하고 해안선을 따라 공사에 들어가 오는 2015년쯤 일주도로 연결이 완공될 전망이다.

이 구간은 20여 년 전만 해도 북면 석포'죽암'선창마을 주민들이 읍지역인 저동과 도동마을에서 생필품을 구입해 아낙네들은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등짐과 지게로 지고 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옛정취만 남아 줄곧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산중턱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해발 150m 높이 동북쪽 방향에는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조망할 수 있다. 주변 4㎞ 해상에는 부속섬 죽도가 아름답다. 그래서 이 길은 소솔한 운치와 바다의 장쾌한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최근에 최고의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주변에는 너도밤나무와 섬피나무, 섬잣나무 등의 울릉도 특산식물과 동백나무, 굴거리 나무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원시림의 맑은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옛길 중간 지점 2㎞ 정도에 정매화 계곡이 있다. 이곳에는 천연암반수보다 시원한 계류가 폭포수처럼 기운차게 흘러내린다. 무색, 무미, 무취의 물맛이 일품이다. 지난 1981년 이효영 씨 노부부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20년 동안 조난당한 주민과 관광객을 수도 없이 구했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지만 집터만 남아있다.

이곳 쉼터를 지나 30분 정도 더 걸으면 석포마을 삼거리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죽암마을 해수욕장과 해상 풍광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나타난다.

◆나리분지 원시림 숲속 길

나리분지 마을에서 알봉분지 신령수까지 가는 2㎞ 구간에는 숲길을 따라 원시림을 걷는 숲속 길이 나온다. 주변은 울릉도 유일의 널찍한 평원이다. 화산 폭발이 생기면서 알봉분지가 형성됐다. 두 분지를 합한 넓이는 120만 평 가까이 된다.

첫 번째 폭발 때 생긴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성인봉(984m)이다.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제189호 원시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한낮에도 빛이 스며들기 어려울 정도의 빽빽한 원시림이 살아 숨쉬는 숲길을 거쳐 들머리의 샘물 신령수에 이르는 숲길은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이곳 나리분지 마을에는 매년 5월 초순이면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 나리마을 주변에는 봄'여름'가을까지 야생에서 자라는 산나물이 지천이다.

◆황토구미~태하등대 옛길

서쪽마을에서 이어지는 황토구미 태하등대 옛길은 한국의 10대 비경 중의 하나다. 특히 최근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선정한 한국 10대 비경으로 꼽힌 태하등대 옛길 전망대에서는 섬지역 북쪽 현포항과 공암(일명 코끼리 바위) 일대와 천연기념물 49호 대풍감향나무 자생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시간만 잘 맞추면 멋진 해넘이도 덤으로 주어진다.

태하마을은 옛 우산국의 도읍지이자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이듬해인 1883년 7월에 54명의 개척민이 첫발을 디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주민 500여 명이 살고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마을 바닷가 입구에서 출발해 오솔길을 따라 3㎞쯤 이동하는 주변에는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들이 길 양쪽으로 터널숲을 연출한다. 30여 분 걷다 보면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태하등대가 나온다. 1954년부터 울릉도 해역을 오가는 배를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으나 시설이 낡아 최근 57년 만에 개량공사를 마무리했다.

요즘은 모노레일을 타고 상부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가파른 숲길을 따라 올라야 했지만 지난 2008년 304m에 이르는 관광용 모노레일 카를 설치한 이후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찾기가 쉬워졌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이어진 해안 절벽의 대풍감(待風坎'해발 171m) 끝자락의 풍광과 에메랄드 빛의 바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마을 옆 해안을 따라 커다란 소라 계단이 눈에 띈다. 암벽을 따라 깎아 만든 해안길 쪽으로 가다 보면 대물이 많이 낚인다는 대풍감 낚시터가 나온다. 이곳도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요즘에는 다니기에 수월하다.

◆도동~행남 가는 길

요즘 울릉도 관문인 도동항 여객선 부두는 여객선이 닿을 때마다 차량과 사람들로 꽤 혼잡하다.

울릉도 관문 도동항 좌안도로~행남등대~도동마을~저동마을로 이어지는 이 옛길 코스의 시작은 도동항이다. 섬 개척 129년 동안 관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곳에서 행남등대 쪽으로 해안길 산책로와 산악 옛길 등반로가 잘 어우러져 조성돼 있다.

도동항에서 해안산책길이 끝나는 마을 입구까지는 30분 거리, 마을 입구에서 행남등대 오르는 길 500여m 양편에는 상록다년초인 털머위 군락지다. 10월부터 12월까지 노란색 꽃을 피우는 털머위꽃은 이 시기에 온 산을 노랗게 물들이며 장관을 이룬다.

10여 분쯤 산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도동항과 저동항 방향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최근 저동항 방향에는 해안 절벽에 만들어 놓은 높이 53m의 꽈배기 다리를 열 번 돌아야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데, 높이가 꽤 높기 때문에 아찔하다.

꽈배기 다리를 다 내려오면 투명하고 맑은 에메랄드 빛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어 누구라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도동항 옛길 쪽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제법 산행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풍경에 욕심을 내 칼날 능선에 다가서면 위험하다. 아래쪽은 수백 길 낭떠러지다. 보는 것만 해도 아찔하다. 능선 옆쪽으로 울릉읍 마을을 연결하는 옛길이 남아있다.

이 밖에 울릉군은 사업비 26억4천만원을 들여 섬을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옛길 정비사업으로 둘레길 조성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양리∼저동리를 잇는 '제3구간'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친환경적인 설계를 준비하고 있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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