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필자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을 새삼 떠올렸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보면 '마치 바람 때문에 고요한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나 파도와 바다는 둘이 아니다. 우리의 일심(一心)에도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眞如)와 무명(無明)이 동시에 있을 수 있으나, 이 역시 둘이 아닌 하나다'라고 화쟁의 원리를 설명해 준다.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며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원효는 이를 가리켜 나열했다 합하고, 주었다 빼앗고, 세웠다 무너뜨리는 것을 통해 화쟁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즉 화쟁은 다툼을 멈추고, 화해하고, 조화 속에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 사상이자 철학이고, 곧 실천인 것이다.
왕자라는 기득권을 버린 부처가 낮은 데로 내려와 중생들과 하나 되었듯이, 나는 화쟁하는 인류야말로 상생하는 공동체를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면서 치우치지 않도록 대화할 때 비로소 발전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한쪽으로 치우침은 곧 분열을 말한다.
마침 정치권의 상황과 맞물려 딱 떨어지는 화두가 아닐 수 없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여당은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쇄신을 단행했다. 그러나 쇄신의 구심체가 돼야 할 비상대책위원회는 구성이 되자마자 돌연 내홍에 휩싸였다. 쇄신이 아닌 오히려 갈등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고,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구주류와 신주류 간 계파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필자가 화두로 삼은 화쟁은 놀랍게도 조직과 국가 개념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화쟁이란 모든 논쟁을 화(和)로 바꾸는 불교사상으로, 원효에 의해 집대성되었고, 한국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화쟁에 내포된 뜻이 어쩌면 이렇게 우리 현실과 꼭 맞아떨어질까. 지구상의 어떤 민족보다 우리는 한과 상처가 많은 민족이다. 타의에 의해 동족상잔과 남북분단을 겪었고,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둘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 그렇다고 남한만 따로 놓고 보아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의 지역, 이념, 종교의 편 가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분열과 대립은 끊이질 않고 심지어는 종교와 정치가 대립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정치권은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다. 내년은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있는 해이다.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진정성 있는 반성과 분명한 변화를 실천하는 쪽이 다음 정권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쇄신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으로는 권력투쟁과 지분 다툼에 급급한다면 필히 대패할 수밖에 없다.
비대위를 둘러싼 여당의 내홍은 겨우 수습국면에 들어섰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도도 모도 아닌 어정쩡한 동거다. 감동은커녕 국민에게 허탈감만 안겨주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데도 여전히 권력다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7월 4일에 치러질 전당대회를 놓고 대권, 당권 분리 규정 개정, 전당대회 투표권자 수 조정, 권역별 전당대회 도입 여부 등 경선룰을 놓고 또다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은 경선룰을 갖고 또다시 분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구성원 간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 먼저다. 앞으로 이 같은 불협화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화합을 이뤄내느냐에 한나라당의 미래는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본다.
생전에 심각한 교단의 분열을 경험한 부처는 입멸에 즈음해 무엇보다도 화합을 강조한 바 있다. "서로 화합하고 다투지 말아라. 물과 젖처럼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귓전에 울린다.
최중근(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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