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고택숙박체험] 선암서원 주변 한옥마을·만화정

입력 2011-05-26 14:05:13

즐비한 고택에서 역사와 운치 한꺼번에 즐겨요

선암서원 주변에는 아름다운 한옥마을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의 사연을 간직한 '만화정'을 비롯한 운강고택을 중심으로 섬암고택, 운남고택, 명중고택, 도일고택 등 한옥 집성촌이다. 한옥의 독특한 건물 양식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역사와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지척에 민병도 화백의 미술관인 '목언예원'도 있다. 시조시인, 수필가로 맹활약 중인 서양화가 민 화백의 물감냄새가 밴 작업실을 구경하면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신지리 고택마을

선암서원 주변마을은 조선시대 청도의 학자로 양대 기둥인 삼족대 김대유 선생과 소요당 박하담 선생이 낙향해서 자리 잡은 마을이다. 김성태(59) 문화관광 해설사와 함께 한옥마을 탐방에 나섰다. 고택을 둘러보면서 '아! 청도지역 양반들의 터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마을의 중심은 '운강고택'(중요민속자료 106호)이다. 운강고택 입구에서 영남대 학생 일행을 만났다. 신지민(25'대구시 달서구 죽전동), 신윤경(25'서구 내당동), 한세미(25'달서구 두류동) 씨 등 3명의 친구는 운문사를 방문한 뒤 이곳 '한옥마을'을 찾아왔다. 도로에 인접한 한옥 마을은 지방도로를 확장하면서 많이 훼손돼 안타까움을 전한다. 운강고택은 대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솟을대문이다. 김성태 문화관광 해설사는 "양반들이 가마를 타고 출입할 때 대문에서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높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1479~1560) 선생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다. 그 후 운강 박시묵 선생이 1824년(순조 24년)에 중건하고, 1905년 후손 박순병이 다시 중수한 집이다. 집 규모가 거대하다. 대지가 5천800여㎡(1천770평)나 된다.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쌍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행랑채, 대문채, 곳간채의 짜임새가 독특하다. 합리적인 공간 구성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 상류층의 주택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사랑채와 중문간채 사이의 담에는 기왓조각으로 길(吉)자와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다른 고택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멋을 냈다. 사랑채를 피해 안채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한 내외문, 안채 곳간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방은 며느리가 친정아버지나 오빠가 찾아오면 조심스럽게 만나던 면회장소다. 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당시의 생활상이 한눈에 그려진다. 운강고택을 중심으로 운강 선생 형제들의 집인 섬암고택(실제 거주'박성규 씨 문패가 있다)과 운남고택, 명중고택, 도일고택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만화정

만화정은 박하담 선생의 12대손 운강 박시묵 선생이 1856년에 건립하여 강론하던 정자다. 운강고택을 지은 후 32년 만에 집 근처에 만화정을 건축했다. 만화정은 한국전쟁 때 피란행렬을 격려하기 위해 청도에 온 이승만 대통령이 하루를 지낸 곳이란 일화가 전해진다.

만화정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동창천변 언덕에 서남향으로 지었으며, 정자 옆에는 세심정이 나란히 서 있다. 평면구성은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 방 1칸, 동쪽에 2칸의 통방을 배치하고 누마루에는 3면에 헌함을 돌려 바닥을 확장하였다. 안방에는 찬방과 찬마루를 따로 두었고 대청에도 여름철을 위한 찬광이 따로 마련돼 있다. 안행랑에는 방앗간과 주인과 하인이 따로 쓰던 변소가 있어 이채롭다.

또한 내·외의 구별이 엄격하던 그 당시에 여자들이 사랑채 앞을 피해서 드나들 수 있도록, 뒷사랑과 안 곳간이 연결된 곳을 터서 작은 문을 만드는 세심함도 보이고 있다. 중사랑채에는 책방과 마루방·온돌방이 있어 서당의 규모를 잘 갖추고 있다. 만화정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수백 년 된 듯한 떡버들 나무와 수려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정취를 더해준다. 인근에 삼족당 김대유 선생의 정자가 있으며 운문사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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