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늙는다는 것의 의미

입력 2011-05-24 10:43:06

시간은 흘러가고 흐르는 세월 속에 우리는 나이를 먹어간다. 나이가 들면 몸이 쇠약해지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쇠약해지는 육체와 더불어, 이 모든 소중한 기억들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바로 '치매'라는 병으로 인해 말이다. 치매는 자신이 삶아온 삶에 대한 모든 기억을 부정하게 만든다. 자신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부정하고, 자신이 사랑하고 아껴왔던 사람들에 대한 부정과 급기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통해 노인성 치매의 무서움과 안타까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살면서 우리에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끊임없는 교육의 중요성은 '치매' 앞에서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교육이 적용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을 통해 그의 삶을 만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치매는 마치 '덮어놓은 책'처럼 어떤 것도 펼칠 수 없고 펼쳐서도 안 되는, 그야말로 어둠의 공간이다. 겉모습과 감정이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이성적, 논리적 부분은 서서히 그리고 영원히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깊은 애정과 사랑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치매'라는 단어와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죽음을 준비하는 병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는 그리고 느끼는 감정은 여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보는 행복의 관점 말이다.

부부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식들이 모두 떠나 버린 텅 빈 둥우리에서 (부부로서) 둘이 함께 그리고 (치매에 걸린 아내와) 따로 살아간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아내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남편이 아내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또, 그런 선택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자살이 알려지지 않도록 친구에게 뒤처리를 부탁하는 남편이다. 참으로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다.

극단적인 빈곤은 인간생활을 예측불가능으로 이끈다. 극단적 빈곤에 처하면 현재의 필요성이 가장 지배적이어서 사람들은 현재 때문에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희생시킨다. 우리의 고려장이 그러했고, '나라야마'라는 소설에 나오듯 가까운 나라인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 시베리아의 코랴크인의 경우 그들의 유일한 자원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을 이동하는 순록 떼들이었다. 겨울은 혹독했고, 오랫동안 걷는 일은 노인들의 기력을 쇠잔시켰다. 대이동이 끝난 후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단지 짐이었고, 부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불치병 환자를 죽이듯 노인들을 죽였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이들은 창이나 단도로 어느 부분을 잘 찔러서 잘 죽였는지를 자랑할 정도였다.

그 당시 사회에는 정말로 먹을 것이 없었고, 누군가 희생을 해야 다른 가족의 생존이 보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이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일어나는 이러한 죽음의 의식, 죽음의 축제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고 자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사회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대판 고려장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럼에도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자살의 길목으로 내모는 자식들을 탓하지 않고, 극단의 순간에도 자식의 체면을 걱정하며 죽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 완벽한 것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노인도 사람이다. 사람이 노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늙는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기 전에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일로 생각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야 이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노인들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도록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속임수는 그만두자. 인간으로서 노인의 삶을 보다 평범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편안한 눈빛으로 그들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자. 그러면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된다. 그것이 진짜 그들이 원하는 아니 우리가 원하는 황혼에 수를 놓는 행위일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정책으로 상징되는 노인복지 정책의 기준점이 바로 이것이 되어야함의 당위성이다.

신효진(경일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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