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의 박정희 이야기] (25)대구지역 최초로 문을 연 골프장

입력 2011-05-06 14:12:18

우리나라 골프의 시작은 1929년,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군자리 골프장이 개장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본래 왕실의 능(陵) 자리였는데, 영친왕 이은 공이 공사비까지 대 주어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하 우리나라 골프는 별 의미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 대다수가 골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군자리 골프장은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열고 닫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농경지로 바뀌었다가,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배려와 주한 미군의 장비 지원으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전쟁으로 폐쇄되었고, 휴전이 되고 난 1954년 7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 뒤 5'16 혁명 뒤에 골프 바람이 세차게 일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서울칸트리클럽 한곳이 고작이었고, 골프는 특권층이나 부유층이 즐기는 게임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가운데 1960년대 중반부터 골프장이 하나둘 건설되었으나 정책적 배려 없이는 골프장 건설이 쉽지 않았다.

구자춘(具滋春'1971년 6월~1974년 9월 재임) 경상북도지사 때의 이야기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지역 순시를 마치고, 대구로 이동하다가 차창을 통해 경산지역을 유심히 살펴보다 구자춘 도지사에게 말하기를 "이제 대구에도 골프장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보기에 경산지역이 적지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 근교에 그런 시설이 있으면 외국인들이나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것"이라며 골프장 건설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그 시절엔 내인가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였으므로 곧장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골프장 조성 예정지인 경산군 진량면 선화리 일대는 야산으로서 척박한 토지였다. 먼저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사업 시행자를 물색한 끝에 우제봉(뒷날 대구칸트리클럽 대표) 씨가 선정되었다. 그는 1971년 6월 11일 경산개발㈜을 설립하였으며, 바로 토지 매수에 착수하였다.

토지 매수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공익사업을 한다는 명분으로 경산군에서 후원하였다. 총괄적인 추진은 백양현 군수가 맡았고, 실무적인 일 처리는 채광락 진량면장이 나서서 했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에 약 12만㎡(40여만 평)에 달하는 부지의 매입을 완료하였다. 뒤이어 골프장 건설공사에 들어갔고, 1972년 10월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완공돼, 대구지역 최초로 개장한 골프장이 되었다. 그 뒤 세월이 많이 흘러 1989년 9월부터 증설공사를 통해 9홀을 추가 건설함으로써 지금은 27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 불어 닥친 유류 파동으로 골프에 대한 열기가 한동안 주춤하였다. 그러다가 경기 회복과 더불어 다시 골프 바람이 일어났으나, 여전히 특별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심지어 '귀족 스포츠'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부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쉬고 있을 적 이야기다.

지역에 새로운 골프장을 건설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당시 실세였던 노태우 씨가 지역에 내려오자 가까운 사람들 몇이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지역의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골프장을 건설하려고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토로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는 거기에 대한 대답 대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전에 대구칸트리클럽에 가다가 길을 몰라 들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물은 적이 있는데, 돌아보지도 않은 채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더라. 말인즉 '아, 그 미친 사람들 작대기 흔드는 데 말이요, 저쪽으로 가 보시오' 하면서 손짓을 하더라." 그게 전부였다. 그 말뜻을 헤아리느라 한동안 헤매다가 '골프에 대한 우리네 정서가 아직 이 정도인데, 조금 더 기다려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 뒤 사회 환경이 빠른 속도로 바뀌면서 골프 열기 또한 열병처럼 퍼졌다. 골프를 즐기려는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골프장에 대한 허가 기준도 크게 완화되었다. 때마침 제9회 뉴델리 아시안경기 때부터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각급 학교 입학에 특기자 혜택을 받게 되자 재능 있는 청소년들이 앞 다투어 입문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박세리를 비롯한 프로 선수들이 세계적 스타로 각광을 받으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골프장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자치단체마다 자체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데 착안하여 크고 작은 골프장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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