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무관 노상추의 일기에서 역사를 읽다
전쟁과 정복, 파괴로 얼룩진 역사책을 읽다보면 영웅과 왕들이 아닌 이름 없이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궁금해진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모여 이룬 역사가 진짜 역사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문숙자의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는 조선시대 한 양반의 일기를 통해 양반의 일상생활과 생각, 친족과의 관계, 촌락공동체의 모습 등 당대의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귀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노상추는 경상도 선산의 안강 노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열일곱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여든네 살에 생을 마감하기 이틀 전까지 일기를 남겼다. 무려 68년 동안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일기를 쓰게 된 과정은 좀 독특하다. 일기를 계속 써오던 아버지 노철이 자식들의 잇단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노상추에게 가장의 지위를 물려주면서 일기를 쓰라는 명을 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의 일기라기보다는 가족의 기록, 가족일기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이 일기에는 일기를 쓰는 당사자뿐 아니라 당대 양반들의 일상과 꿈, 가족관계가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노상추에게는 문과에 급제하여 정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대대로 무관이었던 집안 내력 속에서 어느 순간 무관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하지만 무관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마다 열리는 과거시험에 응시하러 힘겨운 한양걸음을 해야 했고, 서른다섯 살에 과거에 합격해서도 관직을 얻지 못해 몇 년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관직을 제수받은 이후에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가족과 이별하고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외로운 관리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라 가까운 이들과의 사별을 거푸 겪기도 했다. 자신의 어머니와 두 아내를 출산후유증으로 여읜 것이다. 노상추는 그의 아버지와 똑같이 세 번 혼인하고 세 번 아내와 사별했다. 자신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린 여동생을 낳고 어머니가 사망하는 것을 경험한 노상추에게, 같은 이유로 두 아내가 목숨을 잃은 경험은 매우 끔찍하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을 잃은 노상추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는데, 이후 집안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게 과연 하늘의 뜻인가"라고 자문하는 것 외에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양반가의 여성들이 이처럼 출산으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많았던 것을 보면, 그들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았던 하층민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잦은 사별과 재혼을 겪기는 했지만, 양반 남성들은 첩을 들일 수 있었고 기생과의 관계도 보장되어 있었으니, 남편을 따라 죽거나 한평생 수절해야만 칭송받을 수 있었던 사대부 여성들의 처지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직계 가족 외에도 돌봐야 할 친족들이 많았던 노상추는 가족을 잘 건사하고 번성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지고 힘겨워하기도 하고, 영남지방에서는 알아주는 사족이지만 중앙에서는 힘없는 시골양반으로 권세 없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자신의 첩이 낳은 자식을 귀하게 여기고, 말년에는 첩과 그 자식의 보살핌 속에 노후를 보내면서도 적서의 차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선비로서 바르게 생각하고 처신하려고 하면서도 당대의 유교적 가치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모습을 곳곳에서 보이기도 한다. 양반들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였던 노비의 경우, 과거보러 가는 길에 데리고 가고 온갖 심부름이며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가족같이 가까운 존재이지만, 더러 노비가 탈출하는 경우에는 양반들의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반드시 잡아서 가혹하게 벌을 주기도 한다.
"두 번, 세 번 혼인해서라도 정처를 통해 자식을 낳고자 한 것은 신분제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양반으로서의 생존방식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후사를 얻어 가계를 이어가게 한다는 목적이 달성되면, 더 이상 재혼할 필요 없이 첩과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양반사회 남녀관계의 전부는 아니다. 정식 아내와의 관계나 첩과 맺는 관계처럼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조선사회 양반 남성들은 기생 등과도 관계를 맺어왔다. 기생과 맺는 관계는 고향에서, 또는 한양이나 변방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그 관계가 일시적일 수도, 아니면 수십년 함께할 수도 있는 등 관계의 유형이 다양했다."
양반 여성들에게 강요된 도덕적 기준과 매우 다른 남성들의 기준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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