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

입력 2011-04-28 10:38:00

푸른 청바지와 재킷을 입은 한 남자가 차갑게 서 있다.

갈색 선글라스에 팔짱을 낀 굳은 표정의 사나이. 긴 머리의 끝이 웨이브가 져 묘한 느낌을 준다. 필자의 책상 앞에 있는 존 레넌의 피규어(모형 장식품)다. 그를 볼 때마다 흥분이 인다. '헤이 주드', '예스터데이', '렛잇비'…. 주옥같은 노래와 함께한 시대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 경찰봉, 총성 등 니코틴 함량 극대치의 거친 이미지들이 묻어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2010년, 트란 안 훙 감독)가 영화로 나왔다. 사랑의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청춘들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바로 비틀즈의 노래에서 따온 제목이다.

196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즈는 영화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경음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비틀즈 음악이 영화에서 가장 멋지게 그려진 것은 아마 롤랑 조페 감독의 '킬링 필드'(1985년)일 것이다. 1970년대 캄보디아 대학살을 소재로 미국인 특파원과 그를 도와주던 캄보디아 기자의 눈물겨운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캄보디아가 공산주의 정권에 함락되면서 서방의 기자들도 모두 추방된다. 현지인 기자 디스 프란도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시드니와 헤어진다.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던 그는 천신만고 끝에 수용소를 탈출한다. 늪 가득히 시체가 쌓여 있는 땅, 킬링 필드를 벗어나 그는 태국 국경의 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온다. 바로 시드니다. 둘은 눈물의 포옹을 나눈다.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과 인간애. 감동의 그 순간에 존 레넌의 노래 '이메진'(Imagine)이 흐른다. '국경이 없다고 상상하자. 서로 죽이고 죽은 일도, 종교도 없이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노래 가사는 스토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감동의 긴 여운을 주었다.

샘 멘데스 감독의 걸작 '아메리칸 뷰티'(1999년)에서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 갈 때 나오는 곡이 비틀즈의 '비코즈'(Because). 원곡이 아니라 엘리엇 스미스가 부른 노래다. 세상이 둥글다는 이유가 나를 희열에 차게 만든다는 가사는 삶의 끝에서 세상과 포옹하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빠와 딸의 사랑을 눈물겹게 그린 영화 '아이 엠 샘'(2001년, 제시 넬슨 감독), 비틀즈의 노래 33곡으로 만든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년, 줄리 테이머 감독) 등은 비틀즈의 노래가 아예 주인공인 영화다.

반세기가 지나도 영화 속에서 살아 있는 비틀즈를 만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이들이 궁극적으로 사랑으로의 회귀를 노래했고, 이를 통해 상처를 어루만지려고 했기 때문 아닐까.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홀로였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네. 그래도 난 불을 지폈지'라는 '노르웨이의 숲'의 가사처럼 말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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