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푸레디 지음/박형신 박형진 옮김/이학사 펴냄
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오염된 일본산 시금치에 대한 공포는 '유령'이 되어 한국산 시금치 시장에도 출현한다. 일본산 생선에서 발견된 세슘은 한국산 생선에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방사능 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우산 판매가 급증하고, 대기 중에 눅눅한 습기만 있어도 우산을 펴든다. 일부 학교에서는 휴교령이 내리기도 했다.
정부는 한국은 안전하며 현재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시민들은 믿지 않는다.
방사능 공포뿐만이 아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는 전국은 미친 듯 공포에 떨었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는 명절 귀향길조차 막아버렸다. 여성 살해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귀가를 서두느라 종종걸음치고, 아동성폭행 이야기가 나오면 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자녀를 기다린다.
식탁에 오른 맛있는 음식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길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서 범죄의 공포를 느낀다. 낯선 남자의 발자국 소리에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며 경계해야 하고, 골목길을 돌아설 때는 그 안쪽에 괴한이 숨어 있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여야 한다. 공포는 어디나 편재하고, 우리는 사시장철 공포 속에 산다.
사실 우리는 옛날에 비해 훨씬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문명 발달로 인류는 더 안전한 집에 살고, 안전한 음식을 먹고, 안전한 거리를 걷고, 더 안전한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그런데 어째서 공포를 더 많이 느끼는 걸까.
지은이 푸레디는 그 원인을 '신뢰의 상실'에서 찾는다. 모든 사회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있었고, 그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조장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달, 인권의 확장은 분명히 불확실성을 크게 줄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공포를 더 많이 느끼는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폭행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여성은 남성에게서, 노인은 젊은이에게서 폭행과 폭력의 위험을 느끼고,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점은 바로 인간이 인간을 불신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공포를 느낀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과거 인류에게 가장 큰 공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서 기인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느끼는 거의 대부분의 공포는 '인간이 제조한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방사능, 산성비, 유전자 변형 식품, 테러, 납치, 성폭행, 감금, 살해 등 현대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의 대부분의 공포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은 더 윤택한 삶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또 다른 공포와 걱정을 잉태해 버린 것이다.
지은이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험을 학습하고, 그것들로부터 피신하는 '수동적 대처'가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공포를 만들어내는 구조, 즉 인간불신(사회불신)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공포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낯선 이를 신뢰하고, 타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애초부터 인간에 대해 불신을 가졌던 게 아니라, 많은 익명의 인간들이 저지르는 해악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인간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움츠려 드는 방법', 즉 공포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무조건 불안해하지 말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만약 우리가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책은 다만 우리가 공포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얼마만큼 불안해야 하는지, 최대한 상호신뢰하려면 어떻게 서로가 '예의'를 지켜야 할지에 대해 다방면에 걸쳐,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물론 딱 떨어지는 해결책은 없다. 다만 공포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공포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준다.
지은이 프랭크 푸레디는 헝가리 출신 사회학자로 현재 영국 켄트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있다. 건강, 아동, 음식, 신기술, 테러 등과 관련한 문제의 위험 및 공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368쪽, 1만9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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