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기행] <18>군위 팔공산 파계재

입력 2011-04-27 07:20:17

대구 칠성시장까지 산넘고 물건너 12시간 '온몸이 파김치'

팔공산 파계재에 이어 오는 2016년 3월 팔공산터널이 완공되면 또다시 옛길이 될 운명에 처한 팔공산 순환도로.
팔공산 파계재에 이어 오는 2016년 3월 팔공산터널이 완공되면 또다시 옛길이 될 운명에 처한 팔공산 순환도로.
군위 부계면 대율리 입구에 세워진 한밤마을 조형물.
군위 부계면 대율리 입구에 세워진 한밤마을 조형물.
네티즌들로부터
네티즌들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된 산성면 화본역.
팔공산 파계재 옛길 약도.
팔공산 파계재 옛길 약도.

조선시대 이전부터 파계재(해발 805m)는 팔공산 북쪽지역인 의성군 동부지역의 금성'가음'춘산면 주민들과 군위군 동남부지역의 우보'의흥'고로'산성'부계면 주민들 대부분이 대구로 걸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재였다.

자동차 길이 없었을 당시 의성 동부지역의 주민들이 대구로 가기 위해서는 군위 우보를 지나 산성을 거쳐 부계에서 팔공산 파계재를 넘었고, 군위 동남부 주민들 또한 의흥과 산성을 거쳐 부계에서 팔공산 파계재를 넘어 대구로 갔다.

의성 동부지역과 군위 동남부지역 주민들이 대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성면 화본리를 거쳐야 해 화본리가 제1의 만남의 장소였다. 산성면과 부계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꽃님이재를 넘으면 부계면 창평리가 나오는데 이곳은 의성 동부지역과 군위 동남부지역 주민들 외에도 군위읍과 소보 등지에서 오는 주민들이 서로 만나는 제2의 만남의 장소였다.

여기서 팔공산 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대율리와 남산 1, 2리가 나온다. 남산2리에서 수월정사 뒤쪽으로 올라가면 둔덕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팔공산 파계재 정상까지는 계속 산길이다.

하지만 파계재 정상 못 미쳐 해발 600m까지는 그나마 산길이 이어져 있으나, 그 이후에는 길이 끊긴 상태다. 이 길이 언제 끊긴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1960년대 후반까지 적지 않은 주민들이 파계재를 넘어 대구를 오간 것은 사실이다. 이 길을 통행하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긴 지도 어느덧 수십 년이 훌쩍 지났다. 50, 60여 년 전 말린 고추 등 농산물을 지게와 등짐에 지고 이 길을 통해 대구 칠성시장까지 드나들던 당시 주민들의 애환들을 들어보며 옛길을 가본다.

◆군위군 의흥면에서 대구 칠성시장까지 걸어가면 보통 12시간 걸려

군위군 의흥면에서 대구 칠성시장까지 걸어가면 보통 12시간이 걸린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크고 작은 재를 넘어가기 때문에 오전 6시쯤 의흥을 출발하면 오후 6시쯤 대구 칠성시장에 도착한다.

군위군 의흥면 신덕리 속칭 재맞이 마을에 사는 김승채(83) 씨는 파계재를 넘어 대구를 드나들던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자 먼저 손사래부터 친다. 그만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을 터. 김 씨가 이 길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70년 전인 1930년대부터다. 13세가 되자 등짐을 지고 대구 칠성시장에는 말린 고추를, 지금의 칠곡군 동명면 우암장에는 장작 등 나무를 내다 팔고 대신 쌀과 생필품을 구입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김 씨가 대구 칠성시장에 가는 길은 대략 이렇다. 오전 6시쯤 주먹밥 몇 개와 짚신 3, 4개를 등짐에 넣고 의흥면 신덕리에서 출발해 읍내리를 거쳐 위천의 돌다리를 건너고 이지리를 거쳐 산성면 화전리를 지나면 화본리에 도착한다. 지금의 화본역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해 산 쪽을 올라가면 꽃님이재가 나온다. 이 재를 넘어가면 부계면 창평리에 도착한다. 당시 창평리는 대구로 가는 주요 길목이어서 의성 동부지역과 군위 동남부 주민들 외에도 군위읍과 소보면에서 대구로 가던 주민들까지 이곳으로 몰렸다. 교통의 요충지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주민들은 창평리를 큰 마을이라고 해 '원'이라고 불렀다. 창평리에서 발길을 재촉해 대율리(한밤마을)에서 주먹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남산리와 수월정사 뒤를 돌아가면 둔덕마을부터는 파계재로 향하는 산길이 이어진다.

파계재를 넘어 파계사와 대구시 동구 신용동, 무태를 지나 대구 칠성시장에 도착하면 늦은 오후가 된다. 여관에 들어갈 형편이 안돼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칠성시장에서 고추 등을 내다 팔고 대신 쌀과 생필품 등을 구입해 의흥 신덕리로 되돌아오면 발이 퉁퉁 붓고 파김치가 돼버린다는 것. 김승채 씨는 "한 달이면 평균 서너 차례 대구 칠성시장과 칠곡 동명 우암시장에 고추와 나무 등을 내다 팔았다"면서"당시에는 등짐 때문에 기차를 탈 수 없는 데다 차비도 만만찮아 지나가는 기차를 볼 때나 역을 지나가면 기차를 한 번 타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군위군의회 의장을 지낸 홍상근(74) 씨는 "일제강점기 시절 팔공산 파계재를 올라가는 길목 수월정사 뒤에 주막 세 곳이 있었다"면서 "부계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전교생 100여 명이 팔공산 파계재를 넘어 파계사까지 소풍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파계재를 넘어가는 옛길 외에도 광산재를 넘어 칠곡 동명으로 가는 옛길과 한티재 정상으로 가는 옛길이 더 있었다"고 설명했다.

◆팔공산터널 공사로 팔공산 순환도로도 옛길될 듯

1994년 12월 지방도 79호선인 팔공산 순환도로가 개통되면서 파계재 옛길은 전설로만 남았으며, 팔공산 순환도로도 머지않은 장래에 옛길로 남을 운명에 처했다.

2008년 5월 착공한 군위 부계면 창평리와 칠곡 동명면 기성리를 잇는 총 길이 14.24㎞, 폭 18.5m의 4차로 국가지원지방도 79호선 팔공산터널(7.36㎞) 공사가 2016년 3월 완공되기 때문이다.

팔공산터널이 완공되면 부계 일대는 대구 인근의 전원도시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부계의 경우 자연 경관이 뛰어난데다 영남의 명산인 팔공산을 끼고 있어 대구에 사는 사람들의 전원주택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부계면 일대의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게다가 부계면 일대는 볼거리도 적지 않다. 특히 대율리에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한밤마을 돌담길이 있다. 이 돌담길은 한밤마을 전체를 감싸면서 6.5㎞ 정도 굽이굽이 이어진다.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돌로 뒤덮여 있어 많은 사람이 '육지 속 제주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전 대홍수로 마을과 논밭이 돌밭으로 변하자 이 돌들을 버릴 곳이 없어 돌담을 쌓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한밤마을의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운 돌담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 한밤마을에는 전통가옥들의 중심부(부계면 대율리 858번지)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인 대청이 있다. 대청은 원래 조선 초기 부림 홍씨 문중에서 건립한 서당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인조 10년(1632)에 중창된 것으로 학사(학문을 닦는 곳)로 사용된 곳이었다. 그 후 효종 2년(1651)과 숙종(1705) 때에 각각 중수됐고, 1992년에 완전 해체'보수했다. 현재는 마을 경로당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한국관광공사는 2005년 한밤마을을 전국 돌담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했다. 한밤마을 주변에는 송림과 문화유적이 많아 누구나 와서 보고 즐길 수 있다.

대청이 있는 한밤마을에서 팔공산 한티재 방면으로 5㎞가량 올라가면 국보 제109호로 지정된 군위삼존석굴이 있다. 이곳에는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거대한 바위산 절벽에 20m 이상 높이의 천연동굴 속 아미타 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자연 절벽의 자연동굴 속에 만들어진 이 석굴사원은 인공 석굴사원인 경주 석굴암의 석굴보다 조성 연대가 100여년 앞선 것으로, 한국 석굴사원 사상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부림 홍씨 집성촌에 살고 있는 홍상근 전 의장은"부계면 일대에는 자연 풍광도 좋지만, 문화유적도 적지 않다"면서 "파계재로 향하던 옛길과 한티재로 향하던 옛길, 칠곡 동명 우암장으로 향하던 광산재 등 3개의 옛길을 복원해 등산로로 개발하고, 수월정사 뒤에 있었던 3곳의 주막인 '시찌매기'를 복원하면 도시민들이 더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파계재 옛길 인근에 추진되는 역사적인 사업들

군위 의흥면에서 파계재로 향하는 옛길 인근에는 군위군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역사적인 사업들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의흥면 이지리 일대 143만㎡의 터에 사업비 1천374억원이 투자되는 '삼국유사 가온누리' 사업이다. 군위군은 이 사업을 통해 삼국유사의 신화'문학'설화'놀이'장소 등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산업을 접목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문화관광단지로 조성해 맞춤형 관광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삼국유사 가온누리를 국내 대표적 신관광지로 육성 발전시켜 군위 관광 진흥의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한국 문화 5천년을 담는 그릇으로 삼국유사 문화콘텐츠의 세계화를 추진해 삼국유사로 한류 문화를 주도하는 지역으로서의 군위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군위군은 이 밖에 추억과 낭만이 어우러진 산성면의 간이역 화본역 일대를 녹색테마라는 주제로 묶어 문화와 역사의 관광지로 새롭게 탈바꿈하기 위한 '화본역 그린스테이션 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군위'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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