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수업 후 '몰래 과외' 성행 주말동안 몰아서 강의 듣기도"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 큰 뜻은 맞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교육은 대계가 1년 대계인지 2년 대계인지 모를 정도로 자주 바뀐다. 교육의 주체와 피주체 모두가 헛갈릴 수밖에 없다. '전인교육을 통한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양성'을 내세우는 명분과 목표는 거의 같다. 하지만 방법상의 문제나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중구난방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 같은 정권 안에서도 오락가락한다. 이로 인해 미래의 인재들에게 소모적인 에너지를 쏟게 하고, 그 부모들에게까지 스트레스를 준다. 대구에서는 지난 3월 1일부터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의 건강권과 사교육비 절감 등을 이유로 논란 끝에 도입됐다. 규제 이후 사교육 현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 고3 딸을 둔 한 아버지(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우리 딸은 밤 10시 이후 심야교습 규제를 이렇게 피해갑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밤 10시쯤 학원으로 가면, 학원차가 강사 1명과 인근에 사는 학생 4~6명을 데리고 한 학생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자정까지 몰래 보충학습을 하죠. 집에서 학원 수업을 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부족한 과목을 채우고, 대학을 가려는데 그 학습권을 교육당국이 막으려는 게 이상하죠?"
#2. 고3 딸을 둔 한 어머니(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우리 딸은 대구시 교육정책을 잘 따릅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밤 11시30분까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학원 수업은 토'일요일로 모두 몰아서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학원들이 터져나갑니다. 이러나 저러나 너무 고통스런 날들이지만, 고3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참고 지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이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교육이 숨바꼭질은 아닐진대 공부도 숨어서 한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다.'밤 10시'. 이는 자정이 되면 모든 게 현실로 되돌아가는'신데렐라 타임'이나 다름없다. 학원가에는 밤 10시만 되면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학원가 앞에는 학원 승합차들과 부모들의 승용차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학원 앞에서 만난 고3 학생은 "부유한 집의 친구들은 학원에 올 필요가 없잖아요. 새벽 1시든 2시든 개인교사와 편하게 공부를 하면 되지만, 평범한 학생들은 학원에서 시간에 쫓기며 공부를 하고, 또 집에 돌아가서도 부족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중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인터넷 아이디명'하늘나비'도 "현 정부는 정치'경제'사회적 이유를 내세워 교육에서 자율을 유보하고 규제와 통제로 돌아섰다"고 비판했다.
◆대구의 교육현실, 준법 VS 폐지
'밤 10시', 학원 신데렐라 규제 시간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뭔가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또 이를 두고 시작된 소모전 같다. 굳이 찬성과 반대 측으로 나눠서 다툴 필요가 있을까? 현실은 이렇다.
(사)대구학원총연합회 회원들은 지난달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학원의 밤 10시 준법 운영','학생의 야간자율학습과 학원 수강에 대한 선택권 전면 보장', '각 학교의 밤 10시 이후 심야 수업 중단' 등을 결의했다. 연합회 측은 "밤 10시 이후 교습 규제를 받아들이고 향후 연합회 산하 모든 학원은 교습시간을 준법운영할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일단 대구시의 학원들은 밤 10시 심야교습 규제를 겉으로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뒤로는 이를 비웃는 형태의 '몰래 교습'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실은 고교생 부모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개인교습을 하는 '과외선생'들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이들은 밤 10시 이후 개인교습을 통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과외 수요가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에 밥벌이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몰래 교습'을 해야 하는 학생과 부모들은 규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괜한 규제를 만들어 결국 이중고를 겪도록 하고 있기 때문. 이들은 "누구든 각자 알아서 공부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다른 논란, '학교도 밤 10시 적용하라 '
'학교도 밤 10시까지만 공부하라'. 대구학원총연합회는 밤 10시 이후 심야학습 규제를 받아들이면서, 학교에 태클을 걸었다. 연합회는"학원 심야교습 제한에 이어 고교도 야간 강제 자율학습을 없애야 한다. 시교육청에서는 10시 규제 이후 학생의 야간 자율학습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학원 심야교습 규제와 야간 강제 자율학습으로 인한 불'탈법적 고액 과외의 성행이 우려되는 만큼 이에 대한 시교육청의 엄정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교육청은 학교와 학원의 분리정책 입장을 선택하고 있다. 공익적 입장의 학교와 사익적 입장이 강한 학원을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시교육청은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진로 선택, 사교육비 절감 등 공익적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일괄적인 규제는 어렵고, 학교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구, 전국 4번째로 시행, 10곳 적발
서울시는 2008년부터 야간 심야교습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어 경기도와 광주시에서 심야교습 규제 조례안이 통과됐으며, 대구시도 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시행시기는 3개 시'도 모두 올해 3월 1일부터였다. 이를 위반하면 ▷1회 위반 경고 ▷2번 위반 7일간 교습정지 ▷추가 위반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받게된다.
대구시는 이 조례안을 시행하면서 지난 3월 한 달 동안 학원 5천622곳과 교습소 2천125곳 등 총 7천747곳을 단속해 10곳을 적발해 1차 경고를 했다. 지난달 16, 17일에는 교육청 직원들이 밤 10시 이후 규제단속에 투입돼 일제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대구시교육청 이성민 평생체육건강과 학원 담당은 "이 조례안은 학생들의 건강권과 수면권 보장 뿐 아니라 사교육비 절감, 심야 유해현장 노출 위험 방지 등의 취지에서 도입된 것으로 잘 지켜지면 공익적 차원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며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각 시·도 별로 조례 추진을 권장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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