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또 한번의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앞다투어 피어나던 꽃들이 진 자리, 연초록 잎들이 돋아나면서 세상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싱그러운 봄날, 푸르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청보리밭이다. 보리는 우리나라 농촌의 겨울 들녘을 지키는 대표 작물이지만 비닐하우스 재배가 확산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농촌 들녘에 나가 봐도 보리밭을 보기가 힘들 정도다. 보리밭이 귀하신 몸이 되다 보니 관광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고창뿐 아니라 김제'제주 등에서 보리밭을 주제로 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리밭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차를 타고 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흙 밟는 재미를 선사하는 곳이 보리밭이기 때문이다. 넘실대는 푸른 물결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청보리밭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포항 구만리 청보리밭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에서 구룡포 이정표를 따라가다 동해 방면(31번 국도)으로 우회전한 뒤 구룡포'호미곶 방면(929번 지방도)으로 좌회전해 20여 분 달려가면 구룡포와 호미곶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 위치한 마을이 청보리밭으로 이름난 구만리다. 마을과 보리밭은 갈림길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구만리 청보리밭 면적은 33만여㎡(10만여 평)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리밭이 분산돼 있고 보리 농사를 짓는 농가도 줄어 지금은 그리 넓지 않다. 마을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이 되지 않아 보리 농사를 기피하다 보니 보리밭이 계속 줄고 있다는 것. 주위를 둘러보니 시금치 또는 파 밭으로 바뀐 보리밭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농촌인구 고령화로 농사 지을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아예 땅을 놀리고 있었다. 구만리 청보리밭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릴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구만리 청보리밭은 규모면에서 사람을 압도하지 않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다. 바로 바다와 청보리밭의 멋진 조화다. 구만리에서 넘실대는 푸른 물결은 바다만이 아니다. 해풍을 받고 자라는 보리의 푸른 물결도 넘실댄다. 구만리 청보리밭에 서면 눈과 가슴이 탁 트이는 이유다. 때마침 보리밭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선 위로 한 척의 배가 지나갔다. 마치 보리밭 위를 배가 미끌어지듯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다와 청보리밭이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구만리 청보리밭은 사라지기 전에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만한 청보리밭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없을 뿐 아니라 다양한 즐길거리도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나물 뜯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쑥은 뜯는 사람이 없어 지천에 널려 있다. 아이들과 한가롭게 보리밭을 거닐며 나물을 캐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또 청보리밭에서 불과 1.7㎞ 떨어진 곳에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이 있다. 해맞이광장에는 상생의 손, 호미곶 등대, 등대박물관, 새천년기념관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다. 이달 23, 24일에는 호미곶 광장 일원에서 제17회 호미예술제도 열린다.
대구에서 구만리로 가는 길도 멋지다. 해안 절경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 929번 지방도는 봄이라 더욱 빛나는 바다를 끼고 있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청보리는 10월에 파종해 이듬해 6월 수확을 한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이제 막 보리에서 싹이 패기 시작했다. 5월이 되면 키가 훌쩍 자란 청보리밭에서 더욱 싱그러운 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고창·서귀포·김제 등에서도 관련 축제
청보리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장이 전북 고창이다. 고창군은 2004년부터 청보리밭축제를 열고 있다. 올 축제는 이달 23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진행된다. 보리밭 샛길 걷기, 보리 개떡 만들기, 보리피리 불기, 시골길 자전거, 꽃마차 타기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된다. 축제가 열리는 공음면 학원농장은 100만여㎡(30여만 평)의 크기를 자랑한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은 보기만 해도 청신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다.
고창 청보리밭축제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축제 기간이 되면 절정에 이른 푸르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수많은 사진작가와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청보리밭을 찾는다. 주말이면 가족나들이객뿐 아니라 대형버스를 맞춰 타고 오는 단체 관광객들도 줄을 잇는다. 학원농장을 찾는 상춘객은 연간 60여만 명에 이른다. 88고속도로~담양분기점 고창담양고속도로~남고창IC~남고창교차로 함평'영광 방면~외원교차로 대산방면~대산사거리 청보리밭'주민자치센터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학원농장이 나온다.
한편 제주도 서귀포시 가파도에서도 다음달 6∼8일 제3회 가파도 청보리축제가 열린다. 가파도는 본섬과 최남단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 청보리축제는 청보리밭 걷기, 청보리밭 보물찾기, 문어잡기, 보말(고둥)까기, 고인돌 탐방, 해녀 물질 관람 등 다양한 행사로 꾸며진다.
김제시도 다음달 7일부터 사흘간 진봉면 심포리 보리밭에서 '지평선 황금보리 추억의 보리밭 축제'를 개최한다. 경관보전지구로 지정된 진봉 보리밭은 전국 최대 규모인 1천400㏊로 여의도 면적의 1.6배에 해당된다. 김제보리밭축제에서는 한반도 모양의 보리밭 둘레길 걷기, 사랑의 미로 찾기, 승마체험, 보리밭에서 금반지와 상품찾기 등을 즐길 수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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