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성격이 까칠해도 사람을 살리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 "나도 매일 환자를 살리는 의사인데." "엄마, 그건 궤변이야! 다른 병동의 환자보다 엄마 병동(호스피스 병동)의 환자가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은 다 알고 있어. 엄마 환자는 퇴원하기보다는 결국 병동에서 사망하시잖아. 엄마는 따뜻한 의사이기는 하지만, 살리는 의사는 아니거든."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과 나눈 대화다. 환자가 말기 암 때문에 사망해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의사들도 호스피스 의사는 사망진단서를 쓰거나, 소극적인 안락사(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일종의 살인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금지되어 있다)를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병동으로 봉사도 오고, 호스피스 교육도 했는데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잘 보내드리는 의사도 실력 있는 의사임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소설 같은 실화가 있다. 평온관 305호 2인실에 중년 여성 두 명이 입원했다. 경희 씨와 영애 씨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위암 환자로 수술도 했다. 몇 년 동안 살기 위해 투병 생활을 했지만, 암은 간과 뼈로 전이됐다. 성실하고 따뜻한 남편과 대학 다니는 딸, 그리고 고3 막내아들이 있다는 것까지 비슷했다. 투병 생활 중 대체요법을 하는 요양병원에 함께 입원한 적도 있다.
경희 씨는 전업주부에 불교 신자였고, 영애 씨는 직장여성에 가톨릭을 믿었다. 서로 연락할 만큼 친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묘했다. 경희 씨는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일찌감치 호스피스로 연계됐다. 가장 힘들어하던 통증과 변비가 조절되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 감포 바다여행을 계획했다. 고3 아들과 함께 마지막 여행을 간다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희망을 준다. 활짝 핀 벚꽃 구경을 간다고 좋아했다.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호스피스 병동의 일이다.
그러나 영애 씨는 달랐다. 마지막까지 적극적인 치료를 했기 때문에 임종단계에 들어갈 정도로 나빠져서 입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환자가 정신이 어느 정도 맑고,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돼야 입원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는 항상 있다. 무료로 쓰는 2인실도 마침 비어 있었고, 영애 씨 남편의 간곡한 요청으로 서울 모대학병원에서 옮겨왔다. 경희 씨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는 기대할 수 없었다. 호스피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직장동료가 문병 와서 힘없이 누워 있는 환자를 깨웠다. 자는 것이 아니라 임종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떠보라고 울먹거리며 소리친다. 몸의 상태가 좋을 때 이별인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그녀의 가족과 친구는 죽음이 더 힘든 것이다. 그녀들은 같은 것도 많았지만, 끝은 참 달랐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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