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실크로드] ⑭천산 신비대협곡

입력 2011-04-09 07:50:00

해발 1,600m 고지에 10km 넘는 대협곡…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

아득히 먼 옛날 지구의 지각변동으로 신비롭게 형성됐다는 천산대협곡으로 관광객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아득히 먼 옛날 지구의 지각변동으로 신비롭게 형성됐다는 천산대협곡으로 관광객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협곡 사이의 폭은 넓어졌다가 좁아지기도 한다. 바닥에는 물이 흘렀던 흔적이 남아있다.
협곡 사이의 폭은 넓어졌다가 좁아지기도 한다. 바닥에는 물이 흘렀던 흔적이 남아있다.
옛날부터 기도하는 곳으로 알려진 동굴 앞에 소원을 빌며 붙여둔 중국 지폐들이 놓여있다.
옛날부터 기도하는 곳으로 알려진 동굴 앞에 소원을 빌며 붙여둔 중국 지폐들이 놓여있다.
오랜 풍화작용의 흔적이 빗살무늬처럼 남아있는 붉은 절벽의 기이한 모습.
오랜 풍화작용의 흔적이 빗살무늬처럼 남아있는 붉은 절벽의 기이한 모습.

천산신비대협곡(天山神秘大峽谷). 우주 생성의 신비와 대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는 그 계곡으로 성큼 들어선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알고,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사진을 기록하려는 욕심을 품고 천산산맥 바로 앞까지 왔다. 이번 여행에서 역사 유적지나 인문학적인 흔적이 있는 곳은 자료를 통해 대략의 사전지식을 갖추고 방문했다. 그러나 이곳은 협곡 입구에 도착하기까지 간단한 트레킹을 한다는 정도의 개념으로 준비 없이 전혀 미지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천산신비대협곡'이라는 명칭도 과장된 중국식 표현인 것 같아 사람들은 천산대협곡으로 호칭하기도 한다. 대협곡으로 가는 길은 쿠처에서 70㎞ 거리이지만 황토색 절벽과 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멀고 험하다. 그동안 신장지역으로 들어온 후의 여정은 천산산맥을 오른편에 두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왔다. 왼쪽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이 펼쳐져 있다.

실크로드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천산산맥 옆으로만 지나치다가 이제는 드디어 그 산맥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옛날 실크로드를 가던 구법승과 상인들은 저 깊은 협곡을 보고 얼마나 두려워했을까.

몇 십억 년 전부터 지각변동으로 신비롭게 형성됐다는 천산대협곡. 유라시아기판과 인도기판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천산과 타클라마칸 지각의 강렬한 뒤틀림으로 암석들의 파도가 해일처럼 넘친 흔적도 남아있다.

지구의 심장에서 솟구친 마그마가 이제 열기는 식었지만 다양한 형상으로 버티고 있다. 평균 해발 1,600m, 최고봉 2,048m의 산들은 풍화작용과 함께 물에 쉽게 녹아 흘러내릴 수 있는 점토질과 이암, 역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월따라 단단한 골격을 이루는 부분들은 남았고 약한 부분들은 씻겨 내려가 오늘날의 대협곡이 된 것이다. 계곡전체를 한 바퀴 길게 돌면 총 10㎞ 이상4시간이 걸리는 코스인데 가이드는 일정이 바빠 3.7㎞의 협곡, 왕복 2시간만에 돌아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입장료를 내고 입구를 통과해 모퉁이를 돌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기암괴석의 높은 직벽을 쳐다보려면 목을 한껏 뒤로 젖혀야 한다. 그러니 사람들의 입도 저절로 쩍 벌어질 수밖에.

중국 당국이 이곳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인데 수'당 시대의 불상 벽화가 있는 석굴도 남아있다. 건조한 땅이지만 지형상 갑자기 소나기가 잘 내린다는데 몇 년에 한 번씩 나는 홍수로 물이 차 오르면 한길을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을 위해 약간 높은 곳에 대피공간을 설치하고 줄사다리를 드리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산사태로 집채만한 바위들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 불안한데 두려운 마음이 슬슬 몰려온다. 걸어가면서 협곡바닥을 보니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고 물이 흥건히 젖어 있다. 협곡 사이 강바닥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길은 넓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좁아지기도 한다. 이곳 저곳 사진을 찍는 사이 일행들은 모두 앞서 가버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고 인적이 끊어졌다. 부지런히 걸어야 하고 열심히 경치를 보며 촬영도 해야한다. 정해진 시간에 협곡을 빠져나와야 하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협지 등에서 협곡을 지나다가 매복 공격당하는 상상도 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서 '차락차락'하는 소리가 협곡 안으로 울려 퍼졌다. 호흡이 가빠지자 자신의 숨소리도 더욱 크게 들린다.

계곡의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지만 모두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앞으로 계속 나아갔지만 수백 개의 기하학적인 문양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기암절벽들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쉬려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조용하다. 소리가 사라졌다. 그 흔한 새소리는 물론 바람소리까지 없는 절대 고요의 상태를 체험한다. 갑자기 가슴도, 마음도,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정말 먼 곳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이다. 자신의 숨소리와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자연 앞에 비로소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대협곡에서 편협한 마음은 내려두어야 한다.

천산산맥이 갈라진 틈새 즉 천산신비대협곡을 통해 땅속 깊이 지구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자연 앞에 고개를 숙인다. 눈으로 보는 것에만 거치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야 하고 그 감동을 촬영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사진을 가지려 했지만 차라리 대협곡이 보여준 교훈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장엄한 이 비경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었다.

글·사진 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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