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한우 40여 두에 요들송 들려주는 축산농 황무지 씨

입력 2011-04-07 10:16:02

농사꾼·가수 두 인생…"노래 들은 소, 성장 빠르고 육질 더 좋아지죠\

경산시 하양에서 한우를 키우는 황무지 씨가 소들 옆에서 통기타를 치며 요들송을 부르고 있다.
경산시 하양에서 한우를 키우는 황무지 씨가 소들 옆에서 통기타를 치며 요들송을 부르고 있다.

경산시 하양읍 서사리 농촌마을에 자리 잡은 조그만 축사. 갑자기 통기타 소리와 감미로운 요들송이 흘러나오자, 축사 옆을 지나던 등산객들이 음악 소리에 이끌려 축사 안을 들여다본다. 여물을 먹고 있는 소들 옆에선 창 모자와 빨간 재킷 차림의 한 중년 남자가 혼자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들이 여물을 먹을 때 노래를 불러주면 즐거운지 리듬에 맞춰 머리도 까닥까닥거리고,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어대요. 소들도 음악을 좋아하는가 봐요. 참 신기하죠."

비육 한우 40여 두를 키우는 '요들송 가수' 황무지(본명 황신욱'46) 씨. 그는 소도 키우고 음악도 하는 별난 인생을 살고 있다. 그에게 축사는 무대고, 소는 관객이다. 20여 년 요들송을 불러온 그는 봄 햇살이 비치는 볏짚 더미 앞에서 통기타 선율에 인생을 맡기고 있다.

"농군이 음악을 한다고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저에게 음악은 인생이고 축산도 중요해요. 두 인생을 함께 살 수 있으니 남들보다 더 행복하잖아요."

그가 축사에서 음악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무료한 시간에 노래 연습도 하면서 소에게 음악 치료를 해보자는 취지도 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소가 먹이를 먹는 아침, 점심, 저녁때면 언제나 통기타를 연주한다. 통기타 외에도 축사 양편에는 대형 카세트 2대를 설치해 놓고 클래식 음악이나 요들송을 들려주기도 한다.

"음악을 들려준 소들은 그렇지 않은 소보다 먹이도 잘 먹고 살도 더 찌는 것 같아요. 아마 1년 키우면 5㎏ 정도 차이가 날 걸요. 육질 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3년째 소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그는 음악이 소에게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고교 1년 때부터 아버지가 소를 키우기 시작해 일을 도와주곤 했죠. 하지만 외환위기(IMF) 후 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받아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가업을 잇게 됐지요."

음악과 함께하고 싶은 그의 인생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됐다. 교회에 다니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교회 선배 집에 갔다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요들송 노래를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요들송은 '신의 목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성과 진성이 교차하며 울리는 소리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요들송 테이프를 사서 매일 따라부르며 연습을 했어요."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대구지역 요들송 대학연합동아리 '알핀로제'에 가입해 요들송을 배웠다.

그는 축산이 본업이지만 포도농사도 짓고 있다. 축사 뒤편 9천㎡ 포도밭에는 요즘 포도 나무에 영양을 주기 위한 황 소독이 한창이다. 올해도 포도알이 주렁주렁 영글기를 기대하며 일손이 분주하다. 그는 8, 9월 포도가 익으면 포도밭 음악회를 연다고 했다. 올해로 3년째인 포도밭 음악회에서는 포도따기 체험행사와 음악회를 함께 열 계획이다.

"유명한 가수가 되기보다는 삶에 지친 도시민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비타민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재능을 살려 음악 봉사에도 나선다. '사노봉'(사랑의 노래 봉사단) 회원인 그는 3년째 매월 마지막 일요일 대구백화점 앞 가설무대에서 소년소녀가장 돕기 노래공연을 해오고 있다.

2005년에는 음악모임 '아름다운 번개락'을 결성해 청소년 재활원을 매년 4차례 방문해 공연을 하고, 여름밤에는 수성못 주변에서 시민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이 밖에도 비슬락 음악회, 영천 보현산별빛축제, 송앤포엠 등 각종 음악행사에서 초대가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2006년에는 KBS1TV 6시 내고향에 '내고향 명가수'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본명은 황신욱이지만, 이웃 사람들에게는 '황무지'로 더 잘 통한다. 그가 사는 농촌마을이 황무지이기 때문에 개척하자는 의미도 있고, 황무지와도 같은 삭막한 도시민의 마음을 음악으로 풍성하게 만들어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관객인 소를 키우고 노래를 부르며 살겠다고 했다.

한적한 농촌에서 축사를 무대 삼아 통기타를 튕기는 그의 노래인생은 소박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