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심주의 벽 헐자…지방분권운동 열기 '활활'

입력 2011-04-04 10:26:07

신공항 백지화 계기 정부 믿음·환상 깨져

동남권 신국제공항 백지화 사태를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서울과 중앙 권력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더 이상 밀려났다간 지방은 영원한 '2등 국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수도권 패권주의의 벽을 넘어 지방이 생존의 길을 찾으려면 지방분권을 통해 튼튼한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분권운동 후원 고조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에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이후 지방분권 운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활동이 다소 위축됐던 지방분권운동이 신공항 백지화 이후 정부를 상대로 강한 성명을 내고, 대시민 홍보 활동을 역동적으로 하면서 시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이곳 관계자는 "신공항 백지화 이후 서울지역 언론과 정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하는 전화가 하루에 수십여 통 온다"며 "후원 회원 계좌를 틀고 지방분권 운동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이들에게서 수도권 중심주의에 대한 인식전환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신공항 백지화 사태로 인해 지역민들이 주권 의식을 갖고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려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지역 내에서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방분권 운동본부는 시도민들의 힘을 앞세워 정부 정책에 대한 재조명과 시민 홍보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서울 언론 절독 확산

서울 지역신문 절독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본지에 전화를 걸어온 한 시민은 "10년간 구독하던 서울 지역신문(전국지) 2개를 절독했다"며 "이제는 지역 신문만 보겠다"고 털어놨다.

서울지역신문이 지방을'무지(無知)하고 지역 이기주의에만 매달리는 집단'처럼 묘사하는데 분노와 함께 속이 뒤틀렸다고 했다. 이 시민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역민들이 정부와 수도권 언론의 논리에 휘둘리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공항 백지화 후 서울 지역신문을 끊었다는 대구시 고위 공무원도 "신공항을 보도하는 서울 지역 신문의 태도에 질렸다"며 "서울 언론의 벽을 넘지 않고서는 지방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의 힘으로 분권혁신을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도 고조되고 있다. 개인택시 기사 곽경섭(56·달서구 상인동) 씨는 요즘 들어"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이냐며 불평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곽씨는 "정부가 가장 어려웠을 때 든든하게 지탱해줬던 곳이 대구경북인데 정작 영남 출신 대통령과 정부는 오직 수도권 중심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수도권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자주 한다"고 전했다.

직장인 조운호(30·달서구 대명동) 씨는 "지방 사람들은 '서울 공화국'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번에 증명됐다"며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분권혁신운동을 확산시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부 김주희(40·북구 침산동)씨는 "경제, 교육, 교통 인프라가 좋은 수도권에 사는 대통령이 지역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수도권 중심적인 판단과 정책에 늘 피해만 보는 지방민의 신세가 서럽다. 정부가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권한을 지방에 양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줄기차게 밀어붙인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쌓인 불만이 신공항 백지화를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최근 수도권 내 공장 증설 제한을 완화하고 부동산 취득세율을 50%나 낮췄다. 이는 기업의 수도권 집중을 통해 지역 성장 동력을 빼앗고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의 숨통을 조일 가능성이 커 우려가 적잖았던 정책들이다.

김규원 경북대 교수(사회학과)는 "이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사태는 지역민들에게 수도권 중심주의자들이 외치는 '국익'이 지방의 이익이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줬다"며 "이를 계기로 지방분권 혁신운동이 지역민들 전체로 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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