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본주의 존립 허무는 일감 몰아주기

입력 2011-04-02 07:22:00

기업주가 자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편법 상속'증여하는 행위에 대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공정사회를 저해하는 대표적 행위로 간주해 엄하게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관련 세법 개정안을 8월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자녀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는 이미 보편적인 부의 대물림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공정(公正)과 멀어지고 있다. 기업주가 비상장회사를 세워 자녀에게 물려준 뒤 일감을 몰아주면 자녀는 증여세를 쥐꼬리만큼만 내고도 단기간에 회사 가치를 크게 키울 수 있다. 합법의 옷을 걸친 편법적 상속이다. 재벌가의 자녀가 입에 물고 태어났던 금숟가락을 죽을 때까지 물고 있을 수 있는 이유다.

자녀 회사 일감 몰아주기의 구체적 사례를 보면 기가 막힌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로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대주주이다. 현대차 그룹이 일감을 몰아주면서 이 회사의 매출은 2001년 1천985억 원에서 2009년 3조 1천928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에 힘입어 정 부회장 소유의 글로비스 주식 가치는 1조 8천7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정 부회장의 출자 금액(30억 원)의 623배나 된다.

편법 상속 의혹 등으로 구속된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도 전형적 사례다. 2004년 자신이 100% 출자한 티시스라는 회사를 설립해 2년 뒤 아들에게 지분 49%를 넘기면서 계열사 전산 일감을 몰아줬다. 이에 따라 2005년 289억 원이었던 이 회사의 매출은 2009년 1천52억 원으로 급증했다. 티시스 매출의 90% 이상이 태광그룹의 물량이다. STX그룹의 STX건설, 신세계 이마트가 피자 판매권을 준 조선호텔 베이커리 등도 같은 사례다. 그러니 재벌 2, 3세의 경영 능력은 경영 능력이랄 것도 없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존립 근거인 기회의 평등을 처음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재벌 자녀 회사에 일감이 몰리는 사이 다른 협력사들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이래서는 공정사회에 앞서 한국 자본주의의 건강성부터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재벌 스스로 존립 기반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기 전에 재벌 스스로 자제했어야 할 일이다. 이런 불공정 행위가 쌓여가는 사이 금숟가락을 물지 않고 태어난 사람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있음을 재벌은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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