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외환위기 구조조정 참여 마음고생…김호민 농협 국회지점장

입력 2011-04-01 07:48:19

국회는 국회의원이 싸우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있지만 황석영의 북한기행기처럼 '국회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국회 의사당 본관은 본회의장과 각 상임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행과 우체국은 물론이고 세탁소와 이발소, 병원과 식당, 체육시설과 커피숍 등 여러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

2011년 4월 현재 국회 상주인원은 약 5천500명. 국회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국회 사무처'입법조사처'예산정책처'국회도서관 직원과 상시출입 기자를 포함한 숫자다. 국회를 방문하는 민원인들까지 감안하면 늘 1만여 명이 북적거리는 삶의 터전이다.

국회 내에 자리잡고 있는 유일한 은행은 농협이다. 김호민(54'사진) 농협 국회지점장은 "농협 국회지점은 여신 규모가 1천억원에서 1천500억원 사이인 B급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청사 지점과 함께 본부직할로 운영되고 있다"며 "농업과 금융관련 법이 좌우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농협 국회지점은 지난달 신용부문과 경제부문 분리를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농협중앙회의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 지점장은 지난 1986년 10월 농협에 발을 들였다. 민간보험사에서 1년여 동안 일하던 그는 정통금융업에 끌려 농협을 선택했다. 경산군지회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지난 1988년 본사로 옮긴 후 지금까지 고향에 다시 내려갈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그는 "유난히 대구경북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서울 또는 타지로의 전출을 원하지 않아 고향에서 일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며 "대구경북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기적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고 했다. 방학 때가 되면 대구에서 경부'경북선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가 사는 예천으로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그 때 사이다 한 병을 두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다투던 쌍둥이 동생은 환자가 줄을 잇는 명의가 돼 있다. 내시경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호각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바로 김 지점장의 동생이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기획실 조직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며 농협의 구조조정 작업에 참여했던 일을 아직도 잊지 못 한다. 본의 아니게 저승사자 역할을 하느라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을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지점장은 "인력감축 수준이 미흡하다는 상사들의 핀잔과 동료'후배들의 싸늘한 시선 사이에서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생애 첫 언론 인터뷰임에도 불구 전혀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두 딸 중 첫째가 국내 유력 통신사의 사회부 기자로 맹활약 중이었다.

김 지점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부담을 요구받고 있는 것 같다"며 "여유와 사람의 정을 느끼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대구 중앙초등학교, 영남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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