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착각이었다. 서울과 지방의 눈높이는 너무나 달랐다. 영남은 국가 균형발전의 달을 가리키는데 서울은 달 대신 영남의 손에 묻은 지푸라기만 탓했다. 그들에게 서울 아닌 곳의 돈 안 되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방은 여전히 시골일 뿐이었다. 나라 인구 절반의 사람들이 지방도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자는 염원을 전하는데 돈과 사람이 몰린 서울은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신공항이냐고 거들떠보려고도 안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임기 말 안동에서의 국가 균형발전 보고회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은 "서울서 신문사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슨 균형발전이냐"며 "쓸데없는 소리라고 한다"고 꽉 막힌 서울의 벽을 지적했다. 또 "대통령령을 만드는 장관 참모들은 어디에 사느냐. 서울서 일류대학 나온 사람들 아니냐. 서울에 앉아서 서울서 아침 점심 저녁 먹고 서울서 오페라를 보는 사람들이 지방에 관해 뭘 알겠느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가슴속에 균형발전의 가치를 심어놓지 않으면 그냥 무너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며 "균형발전의 가치를 지방이 나서서 지켜달라고 SOS를 치는 것"이라고 서울의 벽에 둘러싸인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신공항 입지 선정 발표를 듣는 순간 영남은 숨을 죽였다. 고작 30점대의 낙제점에 할 말을 잊었고 맥이 풀렸다. 서울 아닌 지방에 사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엿장수 가위질이야 엿장수 마음대로고 이천만 동남권의 염원은 이제 공염불이 된 마당에 가타부타 탓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영남의 얼굴을 붉게 만든 서울의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신공항 백지화를 정한 높은 분들은 경제논리와 백년대계를 운운했다.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했다.
국가의 백년대계란 무엇인가. 국민의 행복 외에 달리 무엇이 있는가. 국민의 행복은 어떻게 가능할까.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오죽하면 상생이 이 시대 화두가 됐을까. 국민 다수의 불만은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데도 돈과 사람을 독식한 서울은 지방의 처절한 현실을 외면했다. 경제논리란 또 무엇인가. 돈을 들인 만큼 남는 게 있느냐는 말인 모양인데 그들의 경제논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본 것에 불과하다. 국가백년대계를 말하려면 적어도 국민 전체의 행복과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의지를 가져야 한다. 국가 불균형이 초래할 사회적 불만과 그로 인한 문제들을 도외시한 채 경제논리 운운하는 이런 궤변이 어디에 또 있을까.
정치논리를 배제한다는 말도 웃긴다. 정치가 무엇인가. 다양한 사회의 요구를 통합 조정하는 일이 정치다. 신뢰와 원칙의 정치적 가치는 돈보다 몇백 배 소중하다. 사회의 조화는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적 과제요 정치의 요체다. 불평등과 불균형을 그대로 둔 채 경제논리가 어떻고 정치논리가 어떻다는 말은 오만이며 거짓이다. 서울은 돈도 정보도 많고 똑똑하고 힘센 사람도 버글버글하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사는 도리가 어떤지 무엇이 중요한지는 안다.
정치권에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의 열풍이 분다고 한다. 임기 8년 동안 인구 25%에 생활보조금을 지급한 덕에 빈민 2천만 명이 중산층으로 도약했고 기업은 활기를 띠었다.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룰라 전 대통령은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서울의 이기주의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선거 공약이 빌 공자 공약이 되는 것이야 다반사지만 1천300만 영남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 어제의 발표는 영남을 분개하게 만든다. 대통령의 자리는 국민의 배를 채워주는 일 못잖게 국민에게 꿈과 희망,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아직도 미국민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까닭은 꿈과 희망 자긍심을 심어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1년 3월 30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과연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주었을까.
영남은 지금 분노한다. 그러나 내일을 포기하는 자폭의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영남은 우리 자손들이 수천 년 수만 년 살아가야 할 소중한 땅이다. 몽골의 말발굽에 조국 송나라의 무너짐을 바라본 사방득은 이런 글귀를 남겼다. 강개부사이 종용취의난(慷慨赴死易 從容就義難'비분강개하여 죽기는 쉬우나 참고 기다리며 뜻을 이루기는 어렵다) 잊지 말고 행동과 실천으로 준비해야 한다.
徐泳瓘(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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