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백지화 이렇게 본다] 정치 부재…절차 불공정 '개탄'

입력 2011-03-31 11:10:21

'동남권 신공항'이 4년 3개월 동안 논란만 키우다 2011년 3월 30일 결국 백지화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대선공약과 맞물려 동남권 신공항을 30대 광역선도프로젝트로 선정하여, 2009년 국토연구원에 용역 의뢰 후 이미 가부(可否) 결과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공약과 광역선도프로젝트 추진을 근거로 계속해서 결과발표를 미루다 현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는 중앙과 지방의 정치력 부재가 빚은 참사로 볼 수 있다. 사실상 이번 백지화 결정은 경제논리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따른 결정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지난 4년 3개월간의 소모적 논쟁으로 인한 시간, 인력, 자원 등의 낭비를 볼 때 과연 이번 결정이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경제적'이라면 지난 2009년 국토연구원의 조사결과를 곧바로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면서 직접 설명에 나섰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설사 이번 입지평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정부와 여당은 대선공약으로 대형 국책사업을 제시하면서 최소한의 타당성 검토도 거치지 않았으며, 그저 표를 얻으려는 속셈임이 여실히 드러난 비경제적인 정치인들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정치는 시도민들이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조용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지역을 플랙카드로 도배하면서 마치 신공항건설만이 우리 지역의 유일한 살길이란 식의 외통수 저급 정치행위를 하면서 백지화에 따른 파장이나 대안은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패배의식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상처를 막아주고 설사 상처가 났을 때는 보듬어주는 것이 시도민들이 바라는 진정한 정치가 아닐까. 더구나 나라와 지역의 미래 경제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국가적 사업들을 결정할 때는 정치적 판단을 배제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기응변식 경제논리만을 내세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지역민들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또한 30일 입지평가위원회의 발표는 절차 공정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절차공정성은 자원의 분배와 할당을 위해 사용하는 절차와 규칙이 얼마나 공정한가의 정도이다. 이번 백지화 발표는 정부의 정책이 법과 원칙에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법이라도 제멋대로 그때그때의 상황논리에 따라 적용되는 정책과 법은 아무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과 법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논리에 따랐다고 얘기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4년 3개월에 걸친 소모적 낭비를 생각하면 이는 결코 경제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지난 3월 9일 소신이라는 포장으로 동남권 신공항 전면 재검토 발언을 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 그후 일관되게 경제논리를 앞세워 신공항 무용론을 주장한 서울지역언론, 심지어 이달 17일 이명박 대통령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의 조찬 회동에서 "차분히 논리를 가지고 따져야지 동남권 신공항을 사업유치(誘致)전쟁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 등등은 이미 신공항 백지화를 전제로 한 발언들이었다. 입지평가위원회의 공정한 평가라는 절차를 무시한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에 대해 지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때그때의 합목적적 고려에 따라 정책이 법과 원칙을 벗어나게 되면(설사 그것을 통해 얻는 바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궁극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신공항 건설 논란은 정치권에서 정치논리로 시작하여 경제성과 합리성을 포장한 경제논리로 마무리를 짓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 지역민들은 진정한 경제논리 때문에 신공항을 원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지역민들은 정치논리가 아니라 철저한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신공항 건설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는 상황논리에 입각한 경제논리만을 내세워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백지화를 합리화시키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제논리에 따라 지역경제 살리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지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재훈(영남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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