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이지 않는 주인

입력 2011-03-31 07:38:21

기업에 매몰된 개인들, 수동적 인간으로 전락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오준호 옮김/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이 책의 지은이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몇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 미국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프 지역에서 강도를 당했다. 그는 이웃들이 범죄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이 사실을 지역 공동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하다거나, 조심해야겠다, 혹은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라 '왜 강도당한 사실을 알려 동네 땅값이 떨어지게 했느냐? 땅값이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는 항의 메일이었다. 러시코프는 사람들이 지역의 안전보다 땅값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대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논리는 무엇인가를 파헤치고 싶었다.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기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는지, 세계경제의 중심에서 어떻게 인간이 배제되고 기업이 주인공이 되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기업은 당시 왕과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설립된 '임시기구'였다.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상거래에 안정성을 담보하고 싶어했으며, 왕은 새로 개척되는 시장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고 싶었다. 상거래의 안정성이란 폭풍에 상선이 침몰하는 경우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피해를 극복하는 방편이었다.

이에 왕은 상인들에게 기업이라는 형태의 기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고, 그들에게 특정 상품과 시장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주었다. 대신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배분받았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은 점점 그 세력을 확장했고, 급기야 '법인'이라는 형태로 일종의 '인격'까지 획득하게 됐다. 인간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주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 경제주체가 바로 '보이지 않는 주인'이며, 이 보이지 않는 주인은 인간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종한다.

'보이지 않는 주인'인 기업은 인간을 빚지게 만든다. 왕성한 경제활동으로 현대인은 더 많은 돈을 벌지만,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 기업은 또 인간을 공동체로부터 분리시켜 '개인'으로 만든다. 개인은 단결하기 힘들며, 기업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진 개인을 쉽게 다룬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각자 다른 곳으로 출근하며, 다른 곳에서 산다. 부자들은 교외에서 살고, 가난한 자들은 도시로 몰리는 것이다.

기업은 옆자리 동료를 협동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입한다. 종업원들이 서로 경쟁할수록 기업의 실적은 올라가고, 그들이 함부로 회사에 대들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든다.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부를 획득한 사람도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월스트리트의 7개 회사에서 일하는 주식 브로커 및 트레이더들은 23%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는 일반인들의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풍부함으로 말미암아 행복감이라는 보상도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1인당 소득이 1만5천달러 정도가 되면 부가 증가해도 그 나라의 전체 행복지수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으로 행복감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행복'을 추구한다. 더 폭력적으로 될 수도 있고, 엉뚱한 일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약육강식의 기업문화에 더욱더 집착하며 상대의 파멸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때때로 이런 것들은 성취욕이라고 불린다.)

지은이는 인간을 위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거창하게 운동을 펼치거나, 자동차를 타지 않거나, 금융시스템과 단절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화력발전소의 에너지를 쓰기 않기 위해 집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한다는 것은 화력발전소보다 훨씬 비싼 대가, 훨씬 반환경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지은이는 극단적인 전환은 더 많은 소비와 낭비, 정신적 외상을 남길 뿐이라고 말하고,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해서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휘발유를 아끼고, 텔레비전을 덜 보고, 덜 먹고, 친환경으로 채소를 가꾸자고 말한다. 개인과 지역이 조금씩 변하면 전체가 변한다는 것이다. 지은이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닐 포스트먼상, 마샬 맥루한상을 수상했으며, 미국의 사회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400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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