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 핵폭탄급 살상무기로 돌변? NO!…문제는 방사능 오염

입력 2011-03-26 08:00:00

쉽게 풀어쓴 원자력 발전 원리·개념

3·11 일본 대지진은 원자력발전이 지금껏 쉬쉬하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셈이 되버렸다. 지진으로 말미암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연이은 폭발과 방사능 유출은 지금껏 원자력 발전의 장점에만 열광했던 인류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준 것. 인간이 원자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경우 원자력은 막대한 살상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해 준 것이다.

1939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핵분열을 발견하고 1942년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된 '원자력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희망. 하지만 원자력은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에너지 혁명으로 비견될 '선물'인가, 아니면 '대재앙의 씨앗'이 될 것인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25주년을 앞두고 인류는 또 한번 원자력으로 인한 중대한 도전에 부딪히고 있다. 과연 원자력 발전이란 무엇인가? 그 기본 원리와 개념을 알아보자.

◆원자력발전과 원자폭탄의 차이점

연쇄적 핵분열은 보통의 화학반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원자력 발전과 원자폭탄은 모두 이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원료의 농축 정도에서 결정적 차이가 발생한다. 원전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는 우라늄-235의 양이 통상 3~5% 정도다. 그리고 핵분열의 반응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다양한 감속 장치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조금씩 열이 방출되도록 조절하고 있다. 이 열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생산되는 방식이다. 반면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라늄-235를 90% 이상 농축해야 한다. 그래야 일시에 열이 방출되면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원자력발전소가 '원자폭탄' 수준의 살상 무기로 돌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방사능 유출이다.

◆우라늄 235, 238

천연에 존재하는 방사성원소(放射性元素)의 하나로 석탄처럼 광산에서 채취한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과 그 주위의 전자들로 구성된다. 원자의 종류는 양성자의 개수로 정해지는데 우라늄은 양성자가 92개 있는 원자를 말한다. 하지만 중성자 수에 따라 우라늄-234, 우라늄-235, 우라늄-238로 부르는데 이들을 동위원소(원자번호는 같아도 원자량이 다른 형제원소)라고 부른다. 양성자의 수는 전자와 함께 그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지만, 중성자는 원자핵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즉 중성자의 숫자가 어느 정도가 되면 그 원자는 안정하게 되지만 그 숫자보다 많거나 적으면 불안정한 원소가 되어 스스로 분열하게 되는 것.

우라늄-235는 중성자와 부딪혀 핵분열이 잘 일어나지만 우라늄-238은 오히려 중성자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천연우라늄 가운데 우라늄-235는 1%밖에 안 되며 나머지는 대부분 우라늄-238이라는 것. 이 때문에 원전을 가동하거나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우라늄-235를 농축해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늘 북한 핵개발 관련 기사에 '농축 우라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심(爐心)이란?

농축된 우라늄을 담배 필터 모양으로 만들어 고온 처리를 하면 원전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재료인 펠렛(pellet)이 된다. 이것을 특수합금으로 만든 기다란 파이프 관에 쌓아넣어 연료봉을 만들고, 이것을 여러 개 묶어 다발로 만들면 연료집합체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핵연료. 이 연료봉을 원자로에 넣고 중성자를 쏘면 핵분열이 시작된다.

최근 일본 원전사태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노심'은 원자로의 핵연료인 연료봉 다발을 일컫는 말이다. 원자로는 핵연료봉과 제어봉으로 구성돼 있는 원전의 핵심 시설인데 이곳에서 핵반응이 일어나는 것. 그리고 노심에서 일어나는 핵분열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멈추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제어봉이다. 원전을 멈추려면 원자로에 제어봉을 완전히 삽입한다.

노심 용해(core meltdown)는 원자로의 노심에 있는 핵연료가 과열이나 이상으로 인해 내부의 열이 급격히 상승하여 연료 집합체 또는 노심 구조물이 녹아내려, 파손되는 것을 가리키는 현상이다. 최악의 경우는 원자로를 둘러싼 구조물이 손상돼 방사성 물질이 주위에 확산될 우려가 높다.

평소에는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이 시작되면 연료봉에서 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열을 흡수한 냉각수가 수증기가 되면서 그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 원자력 발전의 원리다. 하지만 이번 원전 사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서 모터가 작동을 멈췄고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연료봉이 노출, 노심 안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져 노심 용해 사태를 초래했다.

◆경수로와 중수로

원자로의 종류는 핵분열 에너지를 식히는 냉각·감속제에 따라 달라진다. 이때 보통의 물(H₂O)을 사용하는 것이 경수로. 경수 대신 수소 이온 내에 중성자가 하나 더 많은 물, 즉 중수(D₂O)를 사용하면 중수로 원자로가 된다. 예전에는 흑연을 감속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중 흑연감속로와 중수로 원자로는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어내기 쉬운 시설이다. 핵연료봉을 원자로에서 연소시키면 연료봉에 포함된 우라늄 238이 핵무기로 생산이 가능한 플루토늄 239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 플루토늄 239 역시 우라늄과 마찬가지로 순도가 90% 이상일 때 핵폭탄으로 만들 수 있다.

발전용 원자로 중에서는 경수로 비중이 가장 높다. 전 세계에서 운전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80%가 경수로다. 우리나라 역시 1978년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처음 상업용 발전을 시작한 이래 월성원전의 원자로 4기만 중수로이고 나머지는 모두 경수로다. 다른 원자로에 비해 형태가 작고 운전하기도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사용후 핵연료가 더 문제?

사용후 핵연료는 원료가 됐던 우라늄 외에 제논, 스트론튬, 세슘, 플루토늄 등과 같은 맹독성 방사성물질이 새로 생긴다. 그래서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거친 후에도 다량의 방사선과 뜨거운 열이 방출되는 것. 이 때문에 원전에서는 사용 후 연료봉을 깊은 물 속에 담가 열을 떨어뜨리고 방사선을 차폐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의 냉각장치가 고장나면서 온도가 올라가고 냉각수가 증발돼 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된 것. 이에 따라 도쿄전력은 헬기와 소방차를 동원해 냉각수를 다시 채워넣는 작전을 펼쳤다.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각 원자로마다 1호기 292개, 2호기 587개, 3호기 514개, 4호기 1천331개, 5호기 946개, 6호기 876개 등 4천546개 연료봉이 보관돼 있고, 이와는 별도로 6천375개의 연료봉이 별도로 마련된 공용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는 등 약 1만여 개의 연료봉이 보관돼 있다.

◆세계의 원자력 발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발전용 원자로는 모두 442기다. 미국이 104기로 가장 많고 프랑스가 58기, 일본이 54기, 러시아가 32기 등으로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은 21기로 세계 5위 수준인데 전체 발전의 34.8%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62기의 원자로를 추가 건설중이며, 앞으로 158기의 원자로를 더 지을 예정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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