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이 무척 길어서인가, 올해는 봄이 유난히도 기다려진다. 송백(松柏)도 눈이 와야 그 푸른 절개가 돋보인다고 했다. 겨울이 혹독한 만큼 봄의 따스함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도 같은 이치인가.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매화 향이 더욱 짙은 것 같다.
봄의 전령은 매화에서부터 온다. 조선 선비들은 뜰에 핀 매화가 성에 안 찼던지 아예 방안에 들여놓고 끼고 살았다. 매화에 대한 애착도 남달라 얘깃거리도 많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직을 떠나면서 관기 두향(杜香)으로부터 받았다는 매화, 죽음이 가까워지자 그 초라한 모습을 매화에 보이기 싫어 화분을 밖에 내놓게 할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 선생이 노후를 보낸 경남 산청군 산천재 앞에는 선생이 손수 심은 고매 한 그루가 서 있다. 선생이 이 매화를 무척이나 아껴 '남명매'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남 조계산 선암사에는 600년 된 홍매화가 4월 초가 되면 아담한 사찰을 휘덮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다행히 대구 도심 곳곳, 어지간한 공원에는 매화가 심어져 있어 지금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 중에서 괜찮은 곳은 국채보상공원이다. 대구시가 심혈을 기울여 수종을 선택한 덕분에 다양한 종을 볼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흰 매화에서부터 홍매화는 지천이다. 지금 흰 꽃과 붉은 꽃이 달려있다면 모두 매화다. 노란색 산수유와는 쉽게 구분된다.
자세히 보면 능수매화도 있다. 공원 한가운데쯤에 있는데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축축 늘어진 매화다. 마치 큰 고깔모자 같다. 그 가지마다 매화가 촘촘히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부근에는 '납매'라는 희귀종도 있다. 향이 코끝을 스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숨골을 파고들듯 강렬한 것이 특징이다.
지나가는 두 여인에게 물었다. "이 꽃이 무슨 꽃인지 아세요? 글쎄요, 벌거벗은 나무에 꽃이 성급하게 피었네요. 그럼, 가까이서 향기 한번 맡아보세요. 어머, 무슨 향이 이렇게 강하고 좋아요. 매화니까 그렇지요. 어머, 이게 매화예요?" 그리고는 도심에 매화가 있는 게 신기한지 깔깔거리며 이내 갈 길을 재촉한다. 아무리 바쁘지만 매화 향기는 좀 느끼며 삽시다. 그 향기 속에서 '봄의 교향곡'이 들리지 않습니까. 자연이 준 봄 선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다만 향기를 뿜는 기간이 짧은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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