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 때문에 수만 명이 죽었다. 죽음이 한꺼번에 활동하기 시작하면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나도 마음이 무겁다. 평온관은 14명의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작은 병동이다. 근무시간 동안 3명의 사망선언을 할 때도 있지만, 늘 죽음이 무섭고 두렵다.
일본의 호스피스 의사 도쿠나가 스스무는 "작은 들꽃을 돌보는 것처럼 한 사람의 생명을 마지막까지 소중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말기 암환자로 입원해 있으면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다가, 가족의 품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 평온관 생활이다. 일본의 지진 참사(慘死)와는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평온관 생활이 첫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이기 때문에 그조차 힘들어한다. 죽음이 가족의 문제로 다가올 때는 의료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직업과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왔는지에 달려있다. 좋은 죽음은 무엇인가? 자식을 잘 키워내고, 적어도 80세는 넘기는 것이 좋을 듯하고, 병으로 인한 고통 없이 잠자듯이 죽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출생이 선택이 아니듯이, 죽음 또한 선택할 수가 없는 운명이다.
죽음 관한 책에는 하나같이 유언을 하고, 장기기증을 하고, 사전 의료 지시서를 쓰라고 나와 있다.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이 있으면 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해도 나의 죽음을 돌보는 보호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죽음도, 죽음에 대한 준비도 때에 따라 헛된 일이 될 수 있다.
죽음은 그저 서류로 준비하는 것 아니라, 마음으로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자신의 것이다. 죽음이란 독학할 수 없는 분야이다. 다른 사람의 떠남을 경험한 뒤에야 제대로 배울 수가 있다.
케니 G가 연주하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멋있게 부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교회 신자나 가족이 죽음에 이르러 하관(下棺)할 때 색소폰 연주 봉사를 했다. 평온관에도 목요일마다 색소폰 소리가 울렸다.
그가 떠난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왔다. 포항에 있는 아버지 과수원에 농약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 때문에 교통사고가 있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돌보아야 할 식구도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열심히 믿는 그의 종교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천국으로 떠난 것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간 평온관 식구들의 한결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본 죽음 중에 가장 멋진 죽음이었다.
평온실(임종실)에 혼자 누워있다고 상상해 보자. 무엇을 가슴에 안고 떠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나의 환자에게 배운 '좋은 죽음'이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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