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국화와 칼

입력 2011-03-19 07:40:15

1944년 미국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일본 연구서 발간에 착수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연구할수록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에 당혹스러워하다가 마침내 일본인의 본질이 그 모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파악했다. 한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다른 한 손에는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일본이었다. 이 보고서는 2차대전 뒤 '국화와 칼'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됐는데 이후 일본 연구 때 없어서는 안 될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국화는 평화, 칼은 전쟁을 상징한다. 이 책은 국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을 숭배하는 일본인의 양면성을 정확하게 끄집어냈다. 저자는 '일본인들은 드러내 놓고 슬퍼하지 않는다. 속으로 삭이며 다시금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빌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와 방사능 피해를 당한 일본 사람들은 역시 베네딕트의 분석을 벗어나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조용히 울었고, 극적으로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사람들도 (가족'친지를 잃고) 슬퍼하는 이들의 입장을 헤아려 말없이 기뻐했다. 사재기도 없었고, 새치기도 없었다. 조직의 안위를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일본인들은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민족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세계는 이런 일본을 극찬하고 있다.

일본의 저력은 전 세계가 인정한다. 2차대전 직후 국내총생산(GDP)이 전쟁 전의 30%대로 추락했지만 10년도 안 돼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이번에도 그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지만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의 물심양면 지원이 한몫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정부나 국민이 쏟아붓는 관심은 절대적이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 한류 스타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거액을 기부해 일본 열도를 감동으로 뒤덮고 있다. 심지어 수난을 당하고도 배상도 못 받은 정신대 할머니들까지 나섰다. 정부는 정부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조대를 파견한 데 이어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민감한 이슈 때마다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냈던 한일 양국민들이지만 일본이 엄청난 위기를 맞으면서 간극은 상당히 메워지는 느낌이다.

자신들의 저력에다 각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일본이 베네딕트의 분석과 달리 다시는 칼을 드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본다.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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