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온 뒤로 제 아내는 미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머리만 책임질 수 있는 무면허(?) 미용사이지요. 둘째 아이는 들쭉날쭉 바가지 머리를 하고서도 좋다고 '헤헤'거립니다. 미용실에 갈 형편도 안 될 정도로 궁핍하게 사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껴보자 싶은 생각으로 아내가 가위를 들었는데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힌 커트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얻은 성취감이 있었는지 그 일을 즐거워합니다.
캐나다에서 한국 사람들이 집에서 아이들 머리를 잘라주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캐나다의 커트나 파마 비용이 한국보다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캐나다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거나 개인 사업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대부분 저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국과 비슷한 미용실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인 머릿결이 이곳 사람들과 달라서 캐나다 미용실을 이용할 경우 만족도가 낮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유독 머리 모양에 집착하는 첫째 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도 헤어 디자이너가 마음에 들게 손질해 주지 않으면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속상해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전문가의 솜씨를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운 좋게도 전직 헤어 디자이너였던 솜씨 좋은 한국 아주머니가 이웃에 살고 있어서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답니다.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캐나다에서는 미용실을 오픈할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는 다른 나라의 경력과 자격증을 잘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전문직 이민자들을 저임 단순 노동으로 내몰고 있으며 이는 사회통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지금 캐나다에서 인정해주는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이민 가면 뭘 해서 먹고사는지 궁금해들 합니다. IT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취직이 잘 된다, 투자 이민을 가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영어만 완벽하게 잘하면 된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습니다. 캐나다에 온 지 이제 2년밖에 안 돼서 다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어디든 텃세와 차별이 있고 이방인이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캐나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지요.
캐나다의 직원 채용은 회사 내의 직원이나 주변인의 추천에 의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캐나다에서의 근무 경력을 요구하고, 나를 추천해 줄 수 있는 추천인 2명 이상을 요구합니다. 나의 직무와 관련해 좋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이전에 근무했던 직장의 관리자(Manager)들의 추천서를 요구합니다.
캐나다의 이러한 채용 특성이 처음 이민 온 사람들에게 큰 장벽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구조를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민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만 캐나다 사회를 공부하고 있는 제가 보기에는 추천인에 의한 채용이 어느 직장에서나 더욱 성실하게 일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끊임없이 캐나다를 공부하고 장점을 활용해서 생활의 윤택함을 찾아가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어쨌거나 한국 사람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캐나다에서 취업하기 어렵다 해도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칼리지(College) 등에서 개설하는 자격증 취득 및 직업 훈련 과정 이수를 통해 캐나다 사회로 진입하려고 합니다. 절대 안주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한국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끈기는 세계를 통틀어 1등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는 서비스 분야 등에서 최저 임금을 받고 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능력을 인정받아 매니저로 승진하거나 경력을 쌓아 전직 또는 창업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예들이 이민자들에게 희망을 안겨 줍니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 줍니다.
나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이주 노동자들이 그들의 능력에 비해 차별 대우받는 것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무관심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내가 이주 노동자(?) 생활을 해 보니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캐나다인들이 건네는 격려의 말이었습니다. 뒤늦게 후회가 되더군요. '왜 나는 한국에서 외로운 이주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했던 걸까?' 하고 말입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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