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3월이 오면 ②

입력 2011-03-11 07:52:09

우리 아기와의 첫 만남 앞두고 기대도 되고 겁도 나고…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대구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공순득(대구 서구 내당3동)

다음 주 글감은 '미나리'입니다

♥꽁꽁 언 내 마음도 녹을까

따사한 햇살이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꽁꽁 언 내 가슴으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이십여 년 동안 과수원에서 혹사하는 몸도 아랑곳없이 꿈을 향해 달렸던 것들이, 서러움의 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채웠다.

수년 전, 우연히 남편의 휴대전화기에 들어오는 문자를 보게 되었다. 농협에서 보내온 이자를 변제하라는 내용이었다. 대출을 한 일도 없는데 무슨 이자냐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대충 얼버무리는 남편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석연치 않아 직접 알아보려고 농협으로 갔다. 순간 천지가 칠흑 같았고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재산이 송두리째 저당되어 있었다. 과수원이며 벼농사를 짓던 논들이며 대구에서 애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도 알뜰하게 찾아서 잡혀놓은 것이었다.

남편의 바람을 잠재우려고 무던히도 애썼건만 결과는 참담했다. 어떤 여자에게 재산을 탕진한 것이었다. 한 차례에 몇천만원씩 수차례에 걸쳐 몇 년 동안 소주방이며 찻집을 차려준 것이었다. 남편의 말은, 처음에는 한 번만 차려주려고 했는데 털어먹자 '한 번만 더'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옥답 서른 마지기 정도를 빼낸 것이었다. 결혼한 지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땅문서였다. 시부모가 계신지라 보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믿고 일꾼처럼 묵묵히 살아온 바보였다.

'이것이 종갓집 맏손부, 맏며느리, 부지런하고 알뜰했던 아내로 살아왔던 보답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일주일을 문을 닫아걸고 곡기를 끊었다. 희미한 눈앞에는 내 몸에서 솟아나온 새싹들이 어른거렸다. 내가 지켜야만 할 새싹들이다. 죽음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고1, 고3인 새싹들을 위해 추슬러야 했다.

이제 두 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 중이다. 자식이란 희망 주머니를 가슴에 달고 맨발로 뛰는 발바닥은 화끈거린다. 고단한 삶에서 그때의 악몽이 회오리바람으로 '휙' 불어온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그 바람 속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어느 새 내 나이도 지천명을 훌쩍 지나버렸다. 야속했던 지난일도 운명이었으리라. 3월이 오면 응어리졌던 마음의 문을'스르륵'열어 보련다.

권오분(대구 서구 중리동)

♥새학기 맞아 교육비 더 들어 걱정

3월이 오면 어린이집에서도 새 학기를 준비한다. 반편성이 시작되고 스케치북, 크레파스, 색종이, 물티슈 등 자잘한 물건들을 챙겨야 하고 방과 후 수업 안내장을 받게 되는데 생소할 때가 참 많다. 교육비를 절감하는 교육정책이 반갑기는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는 건 부인하지 못하겠다. 어린이집에서 방과 후 수업이 웬말인가?

보육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취학할 나이가 되어서야 교육을 더하게 되는데 어린아이에게 추가되는 교육비, 과연 놀이만큼 더 신나는 교육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올해도 역시 3월에 드는 비용이 많아졌는데 한 자녀 더 갖기 운동을 펼치는 사회단체의 플래카드를 보며 교육비 문제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두 자녀를 두면 교육비는 배가 될 것이지만 외로이 혼자 노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리다. 한 아이에게 올인할 것인가? 자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다복한 가정을 위해 골인할 것인가?

'올인'보다는 '골인'의 쾌감이 더 클 것 같아 올 3월에는 한 자녀 더 갖기 운동에 동참하려 한다. 두 명, 세 명까지도.

문성권(대구 수성구 지산동)

♥배가 산만큼 불러 앉는 것도 버거워

"사람 몸에서 사람 하나를 빼내는 일인데 그게 그리 쉽겠나?"엄마가 항상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 이삐(태명)는 벌써부터 효녀인지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을 주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랐다.

산부인과 진료실에 누워 처음 초음파로 아기 모습을 봤을 때 그냥 얼떨떨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겨우 한 달 정도 지나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았고 임신 소식에 주위사람들은 기뻐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심란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콩닥 콩닥', '꼼지락 꼼지락'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면서 배는 어느새 산만큼 불렀다.

인터넷도 뒤지고 책도 읽고 신문도 보면서 출산 준비에 태교 정보도 많이 얻었지만 제대로 한 것 하나 없이 어느새 이삐가 태어날 날이 한 달 남았다.

3월이 되면 나는 예쁜 아기의 엄마가 된다. 엄마 말씀처럼 '사람 몸에서 사람 하나를 뽑아내는 일'이라 요즘 들어 부쩍 힘들다는 걸 느낀다.

앉고 서고 눕는 것조차 버거워 숨을 헐떡거리기도 하고 배가 살살 아프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신랑이라도 항상 곁에 있어주면 좋으련만 직장 때문에 신랑과는 2주에나 한 번 만나야 한다. 신랑이 없을 때 혹시라도 아기가 태어날까 조금씩 겁도 난다. 따뜻한 3월 무럭무럭 자라 건강하게 우리 이삐가 태어나 엄마 아빠와 만났으면 좋겠다. 나에게 3월은 '만남'이다.

서미화(대구 서구 평리6동)

♥ "아내 봉분 손 좀 봐야지"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자마자 따로 떨어져 생활했었다. 나는 교직생활을 하느라 사방으로 전전하며 다녔고 아내는 40여 년을 신랑도 없는 안동의 시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로 식구들이 합쳤다. 한 곳에 모여 단란한 생활도 잠시 아내는 오랫동안 혼자서 시어른 모시는 일과 4남매를 키우는 일, 나의 뒷바라지 등 많은 일들을 혼자 감당했었고 함께 모여 살면서 다소 긴장을 늦추었다. 순간 여러 가지 몸의 이상이 한꺼번에 생기기 시작하였다. 심장병이 생기고 고혈압에다 중풍까지 걸려 아내는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리고 임종 전까지 암에 시달리다가 영원히 이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시부모를 모시느라고 힘들었을 것이고 내성적인 성격에 표현을 하지 못해 만년 불치병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례 당일 날씨가 워낙 추워 봉분도 제대로 못 짓고 돌아왔는데 지난겨울 얼마나 추웠을까? 해동하여 땅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마음 '일각이 여삼추라'새삼 아내의 효심과 지극한 정성을 오매불망 잊지 못하여 못다한 묘역 수리와 위로의 말을 올려 명복을 빌기 위하여 3월을 기다리고 있다.

박덕근(대구 북구 산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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