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그래도, 봄은 온다.

입력 2011-03-10 07:24:04

이제 몇 번의 봄비가 내리고 나면 이 겨울도 사라져갈 것이다. 눈 많았던 겨울,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 지난해 11월 말 안동 돼지 농가의 구제역 의심신고 이후 삼백 몇십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살처분되는 상처를 남기고 이 구제역의 겨울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겨울이 사라진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구제역의 여파는 침출수 오염 같은 우려를 미완의 숙제로 남겨놓고 있다.

가축 삼백 몇십만 마리를 경부고속도로에 늘어 세우면 그 길이가 얼마나 될까. 나로서는 도대체 가늠이 안 되는 숫자의 가축이 죽어나갔다. 어떻게 해서 그토록 많은 소 돼지가 죽어야 했던가, '살처분'이라는 용어를 '죽여 없애다'로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이렇다.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되자 발생 농가 반경 3㎞ 이내에 있는 가축을 양성판정을 받기도 전에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땅에 파묻는 방식으로 미리 죽여 나갔다. 이러한 싹쓸이가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반경 500m 이내의 가축만 죽여 없애는 것으로 완화했다가, 지난해 12월 25일부터 발생 농가의 가축만 죽여 없애도록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 석 달 동안 340여만 마리의 멀쩡한 가축을 병에 걸릴까 봐, 병에 걸리기도 전에 땅에 묻었다. 이러다 보니 남한강 지류의 매몰지에서 돼지 사체와 함께 침출수가 흘러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참혹한 살처분의 공포와 절망만으로도 모자라서 이제 우리는 가축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로 인한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제역을 겪으며 가슴 아팠던 것에는 또 다른 절망이 있다. 어떻게 이 나라는 이다지도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가 하는 놀라움이었다. 우리가 치러야 했던 구제역 파동은 오늘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거나 숨기고 있는 모든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재앙이 아니었나 싶다.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돼지 핏물이 나왔다'는 따위의 사이버공간에서 나돈 구제역 사태 관련 유언비어의 작태는 이 절망의 하이라이트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기르던 가축을 살처분해야 했던 농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한다는 마음은 찾을 길이 없이, 사료값이나 겨울철 난방비 걱정 없이 한꺼번에 죽이고 보상금을 받을 수 있어서 농민들이 살처분에 기꺼이 응했다거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해 정부가 고의로 구제역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말까지 우리 사회에 떠돌았기에 하는 말이다.

내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의 '개군'이라는 지명은 어딘가 좀 이상한가 보다. 이 주소를 말할 때면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를 못해서 '강아지라는 개, 군대라는 군입니다' 해야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남한강이 흘러내리는 이곳은 산수유와 한우의 고장이다. 봄이면 산수유가 피어나면서 마을과 마을이 샛노랗게 띠로 얽힌다. 산수유와 함께 개군의 특산물이 팔당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인 이곳에서 자란 한우다. 특산물 한우를 상징하듯 면 입구 도로에는 누런 플라스틱 소가 서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봄이면 산수유 꽃이 노랗게 흐드러진 속에 한우 굽는 냄새를 풍기며 봄축제가 열렸다.

이 봄, 구제역의 재앙을 만난 개군에서 개군한우와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은 감감하다. 그리고 같은 마을에서 절망과 희망을 함께 만난다.

마을의 한 해장국집이 '구제역 발생으로 인하여'라면서 발 빠르게 음식값을 1천원이나 올렸다. 야속하지만, 내 음식값 내가 올린다는 주인에게 할 말이 없다. 그런 속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현수막 하나가 나붙었다. '구제역 극복! 양평군민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이 현수막은 인근 제20기계화보병사단 장병들이 양평의 한우단지 개군 입구에 내건 현수막이다. 이 현수막에는 우리가 있다. '나'만 있지 않고 '우리'가 있다. 그렇기에 이 현수막은 희망이 되고 믿음이 된다.

모든 개념에는 안팎이, 긍정과 부정이 있다. 지난겨울, 자신이 기르던 가축이기에 그 가축을 죽일 권리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그와 함께 우리에게는 가축을 살려내야 할 의무도 있었다. 가축을 기를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면 그들을 빛나는 생명으로 존중해야 할 의무도 인간에게는 있다.

한수산(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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