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예술
의과대학에 '의학과 예술'이라는 강좌가 있다. 음악, 미술, 시, 소설, 수필에 대하여 강의를 한다. 이러한 강좌는 우리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여러 대학들에서도 있다. 질병만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의사를 길러내기 위함이다. 필자가 관여하는 부분은 수필이다. 4시간 강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각자 한 편의 수필을 써오도록 하는 과제를 준다.
제출된 글들을 하나하나 읽고 좋은 표현들은 밑줄을 그으면서 감상하고 내용을 평가한다. 어떤 작품은 내가 놀랄 정도로 잘 쓴 글을 만날 때도 있다. 한 학생이 임상실습을 와서 수술실에 들어와 마취를 기다리며 수술대 위에 홀로 누워 있는 환자를 보면서 '홀로 있음'이란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이다. '잠든 것처럼 보였지만 그보다도 더 조용하다. 마치 이 공간 안에 혼자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생각하건대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혼자다. 어쩌면 투병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혼자였을 것이다. 저 수술대 위에 눕게 되면 정말 외롭지 않을까?'
홀로 있음과 외로움은 다른 것이라고 한다. 홀로 있음이 사람으로서 평생 안고 가야 할 숙명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청승맞아 보이는 이야기겠으나,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홀로 있는 순간에도 인간은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주변에 누군가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롭게 누워 있는 환자를 의료진이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주기를 기원하고 또한 그것을 믿으면서 쓴 글 같다.
또 다른 학생이 '연필'이란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이다. '심이 다할 때까지 한결같이 가느다란 흔적을 남기는 샤프는 흐트러지지 않고 살아가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라 하면, 쓰면 쓸수록 부드러운 감촉이 묻어나는 연필은 우리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는 내 어머니의 그 어떤 모습과 닮았다. 툭 하면 속에서부터 고장 나서 분해를 해야 고칠 수 있는 샤프에 비하면, 깎아내면 똑같이 생긴 새심이 돋아나는 연필의 속성은 칠전팔기라고나 할까. 언젠가는 지우개에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몸을 사르며 스스로 짧아져 스러져가는 연필의 모습은 우리네의 삶과도 무척 닮아있다.'
수술을 기다리며 외롭게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는 학생, 우리의 삶이 언젠가는 지우개에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몸을 사르며 스스로 짧아져 스러져가는 연필의 모습이라고 간파한 학생, 그러한 따뜻한 눈길과 삶을 꿰뚫는 예지를 갖는 의학도가 계속 존재하는 한, 의사들은 대중으로부터의 사랑과 존경을 영원히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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