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무언가 놓친 듯한-'原市街地(원시가지)'에 대한 회한

입력 2011-03-04 11:03:58

나의 고향 마을은 경주에서 한때 유흥가로 유명했던 '쪽샘'에 가까운 곳이었다. 넉넉하게 솟은 신라 능묘에 꼬불꼬불한 골목과 나지막한 담장이 어깨를 걸친 참으로 독특한 풍광을 지닌 동네였다. 경주분지 안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었기에, 시가지를 비롯하여 남산과 월성 그리고 대릉원이 이곳에서는 한눈에 들어왔다. 이 덕분에 우리는 '황남대총'이 발굴되어 가는 과정을 동네의 신라 능묘에 올라 바라 볼 수 있었다. 아울러 이 동네는 2002년에 개봉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2005년 초겨울,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리던 고향 경주로 발령이 났다. 다시 시작된 경주에서의 생활이 하루 이틀 지나자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아가는 날도 잦아졌다. 하지만 근 30년을 살았던 우리 집은 이미 수년 전에 철거된 상태였고, 이웃집들도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시가지 곳곳에서도 철거가 한창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노서동, 노동동, 놋전골목, 교동, 성동동 등 경주의 오래된 동네에서는 모두 철거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곳들을 다녀오면 마음 한구석에 항상 허허로움이 가득했었다.

철거 명분은 유적의 보존과 복원이라고 했다. 사적지로 묶어 두기만 하고 살던 이들이 낡은 집을 수리하고 싶어도 못 하게 하였으니, 해결 방안을 내어 놓으라는 민원이 당연히 많았다. 이에 따라 나온 방안이 국가에서 토지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때는 이처럼 마을을 몽땅 들어내는 방식임을 몰랐다. 하지만 철거가 진행될수록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사람들이 옮겨가니 주변의 상권도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거리마다 각종 구호가 걸렸다. 한참 흥청거릴 시간인데도 도심에는 사람이 적었고 상점도 일찍 문을 닫았다.

어느 하루, 지인들과 마주한 술자리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의 대부분은 턱없이 낮은 보상비와 적은 돈 때문에 전세로 나가야만 하는 애환과 관련된 것이었으나 중요한 이야기도 나왔다. 경주에도 언제부터 '신시가지'라는 곳이 생겼고, 예전부터 살던 곳을 '구시가지'라고 했다. 새로 생긴 곳을 신(新)이라 부르는데 무어라 반문하겠는가. 하지만 예전부터 있던 곳을 구(舊)라고 부르는 데 다소 의문이 생겼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계속 등장하는 '구시가지'란 말에 자꾸 방점이 찍혔고, 나중에는 이 말을 두고 모두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구(舊)라는 말이 풍기는 심리적 가벼움과 이기심이 오늘의 사태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고….

오래된 것을 지칭할 때 우리가 자주 쓰는 언어로는 고(古)와 구(舊)가 대표적이다. 고도(古都), 고가(古家), 온고지신 등으로 쓰이는 '고'(古)에서는 다소 품위가 있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 나만의 심상인지 모르겠으나, 이에 대비되게 구(舊)는 조금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구체제(舊體制), 구관(舊慣), 구악(舊惡)에서와 같이 구(舊)라는 언어에는 왠지 갈아엎고 새로 만들거나 버려야 할 것만 같은 이미지가 새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행정기관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구시가지'라는 말에도 버리고 갈아엎을 대상이라는 편의성이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 토론에서 결론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언어에서 찾아졌다. 바로 원(原)이다. 근본이라는 뜻을 지닌 이 언어에 답이 있다고 생각이 모아졌다. 도시의 근원이 되는 곳, 즉 '원시가지'(原市街地) 또는 '원도심'(原都心)이다. '원시가지' 또는 '원도심'이라는 단어에는 보존되어야 할 역사성이 담겨있다. 몽땅 들어내거나 갈아엎어야 할 대상이 아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삶의 질을 보장하면서 역사성도 되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꿈을 꾼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불쑥 신라 능묘와 조선의 성곽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신라 능묘를 지나면 선술집이랑 구멍가게와 찻집이 기다리는 고향 경주를…. 하지만 이젠 다소 어려울 듯하다. 너무 많이 철거되어 사람의 삶이 사라진 잔디밭만 남을 것 같다.

함순섭(국립대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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