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봄이 오면

입력 2011-02-23 07:38:16

겨울이 지루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번졌던 구제역에, 몇십 년 만의 맹추위, 겨울의 끝자락엔 100년만의 폭설까지, 한반도의 겨울이 한껏 심술을 부린 것 같다. 한 계절 동안에 이렇게나 많은 고통을 줄 수 있는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겨울은 정말 곱지 않다. 그 무엇보다 구제역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겨울이 가버렸으면 좋겠다. 봄은 어디서 꾸물대고 있는지. 빨리 와서 구제역이 더 이상 설치지 못하도록 해줘야 할 텐데.

그래도 이제 봄이 가까워졌다. '입춘'이란 절기는 벌써 스무날이 지났고, 달력상으로 봄이 되는 3월도 이제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봄이 오면 겨울이라서 겪었던 고통은 얼마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추워서 움츠렸던 어깨도 좀 펴보고, 덕지덕지 껴입었던 옷가지도 한 둘은 벗어 던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모진 겨울을 이긴, 보송보송 버들강아지, 노란 개나리, 하얀 목련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절이나 환경이 아닌 내 안의 봄은 어떻게 될까? 내 안의 봄, 내가 만들어가야 할 봄이지만 무언가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무슨 모임, 무슨 행사 같은 자질구레한 일상이 벌써 내 봄날의 수첩에 빼곡하게 채워놓고 있다. 그 사소한 것들이 내 삶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정말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봄이 오기 전에 생각하고, 봄이 오면 그것들을 실천해 보고 싶다.

다행히 여러 곳에서 내게 일거리를 주고 있다. 일은 일이되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써야 할 곳이 훨씬 더 많은 일거리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기꺼이 껴안으리라는 다짐부터 먼저 해 본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또 어디 있으랴.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니면 해 주지 않는, 혹은 해줄 수 없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해오고 있지만 오해받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리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오해받지 않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속담이 있지만 아무리 잠시라고 해도 오해받는 일은 가슴이 아프니까.

그러기 위해서 봄이 오면 내 마음을 더욱 키워야겠다. 얼었던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이 쑥쑥 자라듯이, 앙상한 가지에 나뭇잎이 무성해지듯이 말이다. 내 마음을 키우면, 오해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로부터 얻는 기쁨도 커질 테니까. 봄이란 계절은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날들 아닌가. 봄은 날 수는 없다 해도 겨드랑이가 자꾸 가려워지는 계절이다.

손경찬<수필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