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불면증

입력 2011-02-22 10:46:07

그리스 로마 신화는 비교적 인간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잠의 신'이 없을 수가 없다. '잠의 신' 힙노스(Hypnos)는 밤의 여신과 어둠의 신의 아들이다. 그는 보통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항상 눈꺼풀이 무겁다. 말소리는 매우 느려 그의 모습을 보거나 그의 음성을 들으면 잠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의 궁전 문에는 돌쩌귀도 없다고 한다. 문을 열고 닫을 때에 소리가 나면 잠을 자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정원에는 항상 양귀비가 만발하여 밤이 되면 그 즙을 짜서 사람과 동물에게 뿌려 잠들게 했다고 한다. 힙노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솜너스(Somnus)로 알려져 있다. 최면(催眠)을 뜻하는 'hypnosis'라는 말도 거기서 유래됐고 불면증을 뜻하는 'insomnia'의 뿌리 또한 'Somnus'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인간에게 모든 고통과 고뇌를 없애주고 오직 평온함과 기쁨만을 주는 위대한 신의 작품이 아닌가. 그래서 '잠의 신' 힙노스는 오랜 기간 인간의 사랑을 받아왔다. 잠은 곧 어둠과 밤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에게 어제를 지우고 내일이라는 창조의 씨앗을 싹 틔우는 자양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행복한 '잠'에 문제가 생겼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매년 22%나 증가해 2009년에만 26만 명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불면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양떼를 하나 둘 세면 잠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초등학생에게나 적합한 치료법이다. 그날 가슴속에 새겨진 흔적을 잠들기 전에 지우기란 무척 힘들다. 그뿐만 아니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잠을 더 설치게 만든다.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 특유의 정신적 고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불면증 환자는 잠을 잘 자는 사람에 비해 살이 찔 가능성이 4배나 높다고 한다. 배고픔을 호소하는 호르몬이 정상인보다 훨씬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가뜩이나 잠 못 자는 고통에다 비만의 아픔까지 겪어야 하니 갈수록 잠이 안 오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잠'은 오로지 개인적인 현상인가. 무엇이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는가. 그것이 낭만적인 요인 때문이라면 행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병폐라면 크나큰 불행이다. 이래저래 잠 못 드는 세상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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