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낙타의 무릎부터 꿇게 하라

입력 2011-02-21 10:56:22

낙타를 선 채로 두고서는 짐을 실을 수 없다. 무릎을 꿇게 해야만 마음대로 손쉽게 실을 수 있다. 낙타가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려면 먼저 낙타와 주인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은 짐을 싣고 오아시스까지 가면 반드시 물과 먹이가 주어지더라는 약속이 지켜지는 데서 생겨난다.

아라비아인들이 약속과 믿음을 얘기할 때 '낙타가 무릎을 꿇게 해야 내 짐을 마음대로 실을 수 있다'는 속담을 쓰는 이유도 위험한 사막에서의 공생을 위해서는 약속과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 바닥에는 낙타를 무릎 꿇리는 노력은 없고 낙타를 세워둔 채 제 짐 실을 욕심만 내보다가 맘대로 안 되면 싣고 가야 할 짐도 팽개쳐 버리는 세태가 돼가고 있다. 신뢰와 약속은 깨지고 그저 헛된 약속과 거짓 맹세, 말 바꾸기만 넘치고 있다. 아침 나절 철석같이 내세운 약속이 오후가 되면 거짓말이 되고 저녁에 내놓은 정책과 정부 시책은 하룻밤 자고 나면 도루묵으로 뒤집어진다. 그러잖아도 불신이 만연된 공동체가 온통 거짓 맹세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뒤죽박죽되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가지도 아니다. 여기저기, 너도나도 거짓 약속과 헛맹세를 헤프게 내놓으니 이젠 웬만큼 거짓 약속하는 것쯤 두려워하거나 거리껴하는 눈치도 없어 보인다. 더구나 그런 약속 뒤집기와 거짓 맹세들이 정치 세력끼리의 다툼이나 이해(利害)의 싸움이라면 그러려니 해버리면 될 일이다. 문제는 그런 헛된 약속들이 민생은 물론이고 서민, 기업, 군(軍), 교육 등 어느 한 곳 안 번진 곳이 없다는 데 있다.

'없었던 일'로 뒤집어진 '했어야 할' 약속 몇 가지만 골라보자. 전셋값 담합 합동 조사는 칼을 빼든지 단 사흘 만에 부동산 업계 저항에 맥없이 눌려 중단했다. 헛된 약속에 집 없는 서민들의 전세대란 고통만 고스란히 남았다. 옳았다면 그대로 했어야 했던 일이 뒤집어진 작은 사례다. 2012학년도 대입수능시험 영역별 만점자 비율을 1%로 맞추겠다는 약속도 단 이틀 만에 말을 바꿔 뒤집어버렸다. 수많은 입시생 학부모들이 경박한 정책 입안자들의 조령모개(朝令暮改)식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만 한 겹 더 쌓았다. '휘발유 등 유류값이 이상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유사 기름값 분석에 나서는 듯했다가 '기업 간섭이 아니다'며 주춤 물러섰던 정부가 또다시 '기업 팔 비틀기가 아니다'며 되나서고 있다.

언제 또 뒤집고 거둬들일지 알 수 없다. 육'해'공군사관학교 졸업식을 합동으로 치르겠다던 시시콜콜한 약속도 번복됐다. 교가(校歌)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졸업생 등 3만여 인원이 한곳으로 이동하는 게 문제 있다는 반발 때문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인가. 사소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영역까지 경솔한 약속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뒤집히며 불신 사회를 키워내는 건 더 큰 문제다. 크게는 세종시가 그랬고 밀양공항이 그렇고 과학비즈니스벨트도 그렇다. 첫 다짐, 첫 약속대로 순조롭게 곧바로 가본 적이 없다. 당청(黨靑) 회의 하나조차도 정치 판도와 당내 계파 이해관계에 따라 하자고 약속했다가 다시 취소하고 또 모이자며 뒤집는다. 이런 총체적 불신, 헛약속, 거짓 맹세가 크고 작은 조직 구석구석에서 계속 터져 나오면 이 나라는 총체적 거짓말 공화국이 된다. 불신이 만연되고 권력층의 약속이 불신당하니 민심도 한곳으로 모여지질 않는다.

주인을 못 믿는 낙타는 무릎을 꿇어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민심의 등에 싣고 가야 할 국정의 짐들을 제대로 실을 수가 없다. 싣고 가야 할 일들은 사막 모래밭에 팽개쳐진다. 통치 목표들을 진정성 있게 끌고 가고 싶으면 먼저 민심의 신뢰를 얻어라. 다시 말해 낙타의 무릎부터 꿇게 하라는 말이다. '약속한 말은 지키더라'는 믿음부터 심어야 하는 것이다. 신뢰받는 정부, 믿음 있는 사회 구현을 위해 장로이신 대통령과 정치 실력자들이 새겨 읽어봐야 할 성경 구절이 있다. '거짓 맹세를 해선 안 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예루살렘을 두고도…. 네 머리를 두고도 하지 마라…. 너희는 말을 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거짓된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 33~37).

다급한 대로 쉽게 '예'라고만 해대는 정치권의 약속과 맹세 속에 악의 욕심이 감춰져 있으면 낙타(민심)는 결코 무릎을 꿇어주지 않는다. 공항이든 과학벨트든 개헌이든 제발 지킬 약속만 말하라.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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