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대구의 한 고교설명회장에서 있었던 일화다. 우수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각 학교의 홍보전은 치열했다. 발단은 수성구의 한 고교였다. 이 학교는 압도적인 명문대 입시 성적과 사회 요직에 진출한 과거 졸업생 명단까지 호명해가며 학부모들에게 1등 학교임을 자랑했다. 최고 수준 학교인 만큼 '입학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얘기가 길어지면서 약속했던 시간을 훨씬 넘어버렸다.
연단 아래서 대기 중이던 타 학교 관계자들의 낯빛이 굳어졌다. 잠시 쉬는 시간, 설명회장 밖에선 '1등 학교'에 대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광에 쌍피 들고 고스톱 치면서 쓰리 고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대구시교육청이 최근 '학력 향상도 우수고교'를 분석·공개했다. 명단을 보면서 한참 잊고 있었던 그때 일이 기억났다. 물론 그 말이 감히 교육을 화투판에 빗대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시교육청의 이번 분석은 여러 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은 과연 수성학군이 원래 잘하는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좋은 입시 성과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우수한 학업 관리 때문에 그런 것인지 하는 점에 대해 정확히 분석해보려는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수성학군의 입시 성과는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2011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수만 봐도 1·2위 두 고교의 합격자 수(28명)가 나머지 비수성구 6개 고교를 합한 것(25명)보다 많다.
하지만 이런 수성학군에서 전반적인 학력 향상도가 비수성구 고교에 비해 낮게 나타난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수성구 학교에도 학력 향상의 여지가 높은 중·하위권 학생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성구 고교들이 기존의 학업관리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수성학군의 형성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비수성구 고교에 대한 실망감도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이다. 퇴임 1, 2년 남은 신임 교장들이 부임하고, 교사들도 4년만 채우면 학교를 옮기는 관행이 비수성구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원래 입학 자원이 안 좋으니까' 하는 식의 학교의 방만한 태도가 학부모들의 등을 수성학군으로 떠밀었다. 문제는 그렇든 아니든 상당수 학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교육청은 이번 학력 향상 고교를 분석하면서 교육 격차 해소를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교육 격차 해소는 수성학군 깎아내리기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학력 향상을 중요 과제로 내세운 시교육청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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