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모래 어디가 끝인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만약 누가 어레미(바닥의 구멍이 굵은 체)에 파란 물을 담아서 보여 준다면 우리는 야바위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또 만약 누가 모래가 우는 소리라고 들려준다면 우리는 사기극이라고 떠들 것이다.
명사산(鳴沙山)은 모래가 우는 산이고, 월아천(月牙泉)은 어레미 같은 모래골짜기에 얹혀 있는 작은 호수다. 그 호수는 아직 적선(謫仙)이 머물러 있을 장소 같고, 달밤에 보면 마법으로 불러온 환상의 호수 같아 귀기(鬼氣)를 느낄 것이다. 호수의 파랗기는 사막이 비장해 온 비수 같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가 아편을 복용한 뒤에 꾼 먼먼 동양의 꿈이 이런 경치였을 것이다.
월아천을 보러 가는 명사산 입구는 어수선하다. 긴 건물 통로에는 낙타 몰이꾼들이 모여 독한 담배를 피우면서 악머구리 소리를 내고, 수십 마리 낙타들은 뜨거운 모랫바닥에 꿇어 엎드려 있다. 지정해 준 낙타의 쌍봉 사이에 다리를 벌려 앉으면 기우뚱 '사막의 배'가 정강이를 세우니 내 키 만한 높이로 솟는다. 몰이꾼이 다섯 마리씩 고삐를 앞 낙타에 묶어 일렬로 만든 뒤 맨 앞의 녀석 고삐만 끈다. 내 낙타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녀석은 더 없이 천진해 보인다. 손바닥 만한 얼굴인데, 길고 부드러운 털 속에 맑고 큰 눈이 묻혀 있다.
엊저녁 낙타발바닥 요리라고 먹은 것이 썩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혹사시키고는 발바닥을 오려 먹는 것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가.
반 마장 정도 가서 낙타에서 내린 곳에도 수십 마리 낙타가 굴종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다시 조금 걸어가서 바라다보는 경치는 아, 인간의 경치가 아니다. 사막 한가운데를 찢고 파란 물을 담은 호수 하나가 그림처럼 떠 있고, 그 뒤론 조용해라, 적선이 잠들어 있을 빼어난 정자가 서 있다.
말로만 듣던 월아천, 물은 맑고 투명하여 거울처럼 종일 뜨거운 해를 품고 있다. 둔황 남쪽의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지하로 흐르다가 왜 하필 여기에서 솟아날까. 이 월아천 사방엔 모래 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면 금방 모래 산이 세찬 바람에 옮겨와 월아천을 메울 것 같지만, 선계의 섭리는 다르다. 세찬 바람이 불면 모래가 울며 산을 휘감아 위로 솟구치다 산 바깥쪽으로 유사(流沙)를 흘려보내, 전혀 월아천을 메우는 법은 없다고 한다.
이 월아천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오래전 둔황이 갑자기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자 어여쁜 선녀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샘을 이룬 것이 월아천이라는 것이다. 후에 선녀가 샘 안에 초승달을 던지니 샘이 푸른빛을 띠게 되고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국 전설은 사실 귀기와 원한까지 느껴지는 이 월아천엔 너무 밋밋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나라 같으면 억겁을 두고서도 풀 수 없는 어느 한 맺힌 여인네의 원혼이 서려 있는 그런 전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네는 촉석루나 영남루 같은 빼어난 경치엔 꼭 논개나 아랑낭자의 원혼을 서리게 하여 그곳을 가슴 찡한 감동으로 보게 하지 않던가.
월아천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모래 한 줌을 집어 뿌려 보았다. 작은 입자들이 제마다 빛의 입자로 바뀌어 사라진다. 아마 저 모래 산의 모래는 다 빛의 입자들이 결정을 이뤄 쌓인 것이기에 저리도 눈부시리라. 또 사막의 바람소리가 수억 년 울다 결정을 이룬 것이 저 모래언덕이리라. 사물은 죄다 스스로 제 이름을 울린다고 하지 않는가. 저 모래가 내는 울음소리가 기실은 바람소리이고 제 이름이리라. 생각할수록 신비한 땅, 세상에!
명사산을 나서니 또 갈 길이 멀다. 하미(哈密)까지는 도로가 막히면 12시간도 걸린다고 한다. 둔황시 부근에는 그런대로 관수를 하여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시가를 벗어나자 마주해야 할 억겁의 운명처럼 또 막막한 사막이 펼쳐진다. 그러나 신기하다, 띄엄띄엄 홍류(紅柳)가 군락을 이루며 꽃을 피워두고 있지 않는가. 홍류는 낙타풀과 함께 사막의 대표 수종이며, 우리나라 정원에 위성류(渭城柳)라고 심는 것과 비슷한 종이라고 한다. 가지 끝의 분홍빛 꽃이 스코틀랜드에 지천으로 피는 히스 꽃을 연상시킨다.
하미로 가는 사막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 심심하기 그지없다. 노면이 너무 울퉁불퉁하다 보니 버스가 숫제 말처럼 풀쩍풀쩍 뛰어간다. 왼쪽 까마득한 곳에는 호수에 섬이 두세 개 떠 있는 신기루가 펼쳐진다. 아무리 카메라로 당겨 찍어도 당겨오지 않지만 그곳은 분명 파도가 밀려오는 낭만적인 호반이다.
신장성(新疆省)에 입성하자 갑자기 위구르어 간판과 대형 화물차들이 많아진다. 더러는 거대한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실은 트럭도 지나간다. 지평선 한 쪽을 노을이 오래도록 발갛게 태우더니 땅거미가 내린다. 다들 졸음에 젖고, 여수(旅愁)에 젖고, 어둠에 젖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실려 간다.
글·박재열(시인·경북대 교수) 사진·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