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우연과 필연은 종이 한장 차이

입력 2011-02-17 07:43:41

그린 베리 힐이란 작은 마을에서 한 선량한 약사가 강도 셋에게 피살됐다. 그런데 그 강도들의 이름이 그린, 베리, 힐이었다.

부모의 계속된 부부싸움에 넌더리가 난 소년이 옥상에서 투신했다. 그런데 추락하던 소년이 엄마의 총에 맞았다. 안 그랬으면 소방관의 그물에 걸려 살았을 것이다. 엄마는 늘 빈 총으로 남편을 위협하며 부부싸움을 했는데, 소년은 둘 중 아무나 죽으라는 생각에 총을 장전했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기 집 창문을 지나는 찰나 엄마는 총을 발사했고, 그 총알이 소년의 가슴팍을 강타한 것이다.

이런 일들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1999)는 우연 치고는 기가 막히고, 필연 치고는 어처구니없는 이런 일들을 거론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꼬이고 꼬인 세상사가 의외에서 해답이 나올 수 있다고 얘기하며 기구한 9명의 삶을 풀어낸다.

다음 달 개봉하는 맷 데이먼의 영화 '컨트롤러'는 우연과 필연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전도유망한 정치인 데이비드(맷 데이먼)는 신비한 매력의 무용수 앨리스(에밀리 블런트)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의 정치 생명은 위태로워지고, 알 수 없는 힘이 둘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결국 그녀와의 만남은 물론, 그의 정치 생활, 그를 돕는 친구들까지도 모두 일명 '조정국'의 '미래 설계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데이비드. 이제,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자신의 미래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조정당하는 남자의 운명. 우연이라는 모든 것이 결국 이미 짜여져 있는 필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그놀리아'의 결말은 기이한 우연으로 그려진다. 하늘에서 수많은 개구리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거리에도, 지붕위에도, 베란다에도, 수영장에도…. 죄책감과 후회로 쓰러진 주인공을 싣고 가던 앰뷸런스 지붕에도, 딸에게 외면당해 자살을 시도하던 아빠의 집에도, 마약 때문에 괴로워하던 딸의 창문 밖에도….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상처와 사슬들을 풀어주는 계기로 개구리비를 내리게 한다. "봐! 이런 일도 있어! 사람이 이겨내지 못할 일이 세상에 어디 있어?" 너무 힘들 때는 내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말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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