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 영남대병원 외과 김재황 교수

입력 2011-02-14 08:00:15

세계 최초로 수술 중 장관세척기를 개발한 영남대병원 외과 김재황 교수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의사다.
세계 최초로 수술 중 장관세척기를 개발한 영남대병원 외과 김재황 교수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의사다.

영남대병원 외과 김재황(54) 교수는 대장암(결장·직장·항문) 수술을 하는 의사다. 기존엔 장폐색증이 온 대장암 환자는 두세 차례 나눠 수술받아야 했지만 그는 한 차례로 끝내는 수술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2005년 의과학상을 받았고, 세계학회에서도 인정받았다. 늘 새로운 것을 꿈꾸고, 보다 나은 치료법을 찾는 것이 대학병원 교수의 의무라고 말한다.

◆수술 중 장관세척기, 세계 최초 개발

"대장암 환자 중에 암덩어리가 커져서 장을 막아버리는 '장폐색증'으로 오는 환자가 20~30%쯤 됩니다. 장이 막혔기 때문에 배변을 하지 못해 대장 내에 대변이 가득 찬 상태죠. 수술 전에 장을 깨끗이 비워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종전엔 2, 3단계로 나눠 수술을 해야 했다. 먼저 배를 연 뒤 암이 발생한 대장 부위를 30㎝가량 잘라낸다. 잘린 위쪽 부위에 인공항문을 달아 배 밖으로 연결하고, 잘린 아래쪽 부위는 닫아둬야 한다. 여기까지 1단계 수술이다. 2단계로 장에 가득 찬 대변을 빼내고 3개월가량 지나서 인공항문을 떼낸 뒤 아래쪽 대장과 다시 연결해 뱃속에 넣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배를 열고 닫는 큰 수술을 두 차례 이상 받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환자가 고령이어서 고혈압, 당뇨 등을 앓고 있다면 쉽사리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령이나 상태에 따라 심한 경우 50%가량의 환자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2단계 수술을 포기한 채 인공항문을 달고 살아간다. 이런 수술을 한 차례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 교수는 바로 여기에 착안해 수술 중 장관세척기인 '나이시'(NICI)를 개발했다. 언론을 통해 2001년에 소개됐지만 실제로 첫 수술은 1999년에 이뤄졌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장폐색 환자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대장 내시경도 자주 받는 편이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지만 당시엔 사정이 달랐습니다. 응급환자로 분류돼서 밤낮없이 수시로 불려나갔습니다."

◆새 수술법으로 500례 이상 집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배를 가르고 수술에 나서면 대장에 가득 찬 숙변 때문에 수술실이 온통 냄새에 시달려야 했다. 환자는 밀려드는데 수술을 두세 차례 나눠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한번에 수술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이유다.

"사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암세포가 생긴 대장 옆에 구멍을 뚫고 특수기구를 답니다. 그리로 물을 넣어주면 숙변이 차츰 녹아서 옆에 달아둔 수거기로 모입니다. 20분 정도면 숙변을 완전히 제거한 뒤 대장암 수술을 할 수 있죠."

수술이 한 차례로 끝나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숙변을 제거해서 깨끗해진 대장으로 내시경을 집어넣어 대장 내 다른 곳에 발생한 암이나 용종도 찾아 제거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수술법이다. 제18차 세계대장항문학회의 논문 발표에서 간단하고 안전하면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수술법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500례 이상 수술을 했다.

"만약 1단계 수술에서 다른 암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3개월 이상 암세포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1999년 첫 수술을 했던 환자 역시 다른 부위에서 암이 발견돼 동시에 제거했죠. 지금은 70대 노인인데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남대병원에서 한 해 수술하는 대장암 환자는 300여 명. 이들 중 10~20%는 장폐색 상태로 온다. 이런 환자는 '나이시'를 이용한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이 수술법을 다른 병원이나 의사들이 모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의사들이 암세포 사이에 구멍을 뚫어 스텐트를 집어넣은 뒤 장을 넓혀서 배변을 유도한 뒤 수술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어느 방법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스텐트를 쓸 경우 암세포를 뚫는 과정에서 장 천공이 생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자칫 복강 내에 암세포를 퍼뜨릴 수도 있습니다.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는 셈이죠. 대개 장폐색이 온 대장암은 2, 3기 정도인데 장 천공이 되면 곧바로 4기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술비 부담도 훨씬 큽니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은 의무

'나이시'가 보편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말을 아꼈다. 만약 이 수술법을 외국에서 아니면 수도권에서 개발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영남대병원에서는 지금도 연간 50례 이상 나이시로 수술한다.

지금껏 김 교수는 20년간 영남대병원에 몸담으면서 2천500~3천 건에 이르는 수술을 했다. 1993년 복강경으로 대장암 수술을 해낸 1세대 그룹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복강경 수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인식도 낮았고 비용도 비쌌다. 외환위기가 닥친 뒤 1998년 이후 복강경 수술을 중단했다가 2005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전체 대장암 수술의 90%를 복강경으로 한다.

김 교수는 이 밖에도 여러 수술법과 수술기구를 고안해냈다. 이처럼 꾸준히 연구개발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그는 엉뚱하게도 "호텔에 가는 것과 병원에 가는 것 중에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할까"라며 되물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고통을 떠올리는 병원이 마치 호텔에 가듯이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지 않을까"라고 했다.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다.

"의학을 학문으로서 존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가 믿는 진리는 현재에 맞는 진리일 뿐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겁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의학 교과서를 몇 년마다 버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무작정 서울로 찾아가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돈 많은 환자뿐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분들까지 일단 서울로 갑니다. 대구에서 충분히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명의로 소문난 의사에게 수술받았다가 합병증이 생겨서 뒤늦게 저를 찾아오는 분도 봤습니다. 지역에도 뛰어난 의료진이 많습니다. 믿고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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