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석빙고 얼음운반 재현, 누렁이 대신 사람이 끌었다

입력 2011-02-12 08:54:35

가축이동제한으로…구제역 슬픈 자화상

구제역 여파 속에 11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안동석빙고 장빙제에서 지난 9년간 줄곧 달구지를 끌던 누렁이 대신 소의 탈을 쓴 인부들이 달구지를 끌며 운빙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올해 달구지를 끌 예정이던 소가 구제역으로 가축 이동제한에 묶여 사람이 대신했다고 행사 관계자는 전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구제역 여파 속에 11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안동석빙고 장빙제에서 지난 9년간 줄곧 달구지를 끌던 누렁이 대신 소의 탈을 쓴 인부들이 달구지를 끌며 운빙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올해 달구지를 끌 예정이던 소가 구제역으로 가축 이동제한에 묶여 사람이 대신했다고 행사 관계자는 전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누렁이 대신 사람이 얼음 달구지를 끌다.'

11일 안동시 용상동 용정교 아래 강바닥에서 재현된 '석빙고 장빙제'에는 구제역 여파로 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얼음 달구지를 끌어오던 12살배기 '석빙고 누렁이'를 대신해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사용해오고 있는 '인형 소'가 등장해 안타까움과 함께 이색 볼거리를 제공했다.(본보 8일자 2면 보도)

올 해로 9회째를 맞은 석빙고 장빙제를 준비해온 안동 전통문화콘텐츠개발사업단은 당초 구제역 여파에도 불구하고 북후면 신전리 학가산 자락 북적골 마을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석빙고 누렁이'에게 올해 장빙제 얼음 달구지를 끌도록 할 계획이었다. 누렁이의 건강한 모습을 통해 축산명가 재건과 지역경제 회복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 것.

하지만 행사 하루 전까지 안동시 등을 상대로 행사의 취지와 얼음 달구지를 끄는 '석빙고 누렁이'의 의미 등을 설명하며 설득했으나 가축이동 제한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누렁이를 학가산 보금자리에서 40여km나 떨어진 행사장까지 이동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행사에는 그동안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왔던 천으로 만들어진 '인형 소'가 등장했다. 이날 인형소에는 탈춤 때와 마찬가지로 2명의 장정들이 허리를 굽힌 채 '인형 소'를 뒤집어 쓰고 소 달구지를 끄는 시늉만 했으며, 채빙한 얼음덩이를 실은 달구지는 사실상 여러 명의 일꾼들이 끌었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은 한목소리로 "구제역으로 피폐해진 안동지역 현실을 단면을 보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인형 소를 통해 구제역을 극복하고 지역경제를 회복하려는 지역민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석빙고 누렁이 주인인 김종태(77) 할아버지는 "누렁이가 장빙제에 나가 건강한 모습을 전국에 보여 구제역 광풍에도 끄떡없이 견뎌내고 얼음 달구지에 희망을 실어 전할 수 있기를 소망했는데 이동제한 때문에 참가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고영학 전통문화콘텐츠개발사업단장은 "비록 오늘 행사장에 참가하지 못해 인형 소가 대신했지만 '석빙고 누렁이'의 건강한 소식에 우리 회원들 모두 눈이 오는 날씨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석빙고 장빙제는 아침부터 눈이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장빙제는 ▷안동 용정교 아래 강바닥에서 사한제와 채빙(採氷) ▷소달구지와 어깨목도를 이용한 운빙(運氷) ▷안동댐 인근 석빙고(보물 305호)에 채워 넣는 장빙(藏氷)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가 끝난 이후 참가자들은 한데 어울려 임금님에게 진상했던 낙동강 은어 모닥불구이를 맛보았으며, 사한제에 쓰였던 제물을 내려 떡과 과일을 비롯해 잔치국밥, 안동간고등어, 막걸리 등 푸짐한 먹을거리를 즐기기도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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