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봄 명산'이 눈꽃으로 산꾼 유혹
최근 두드러진 기상현상 중의 하나가 호남지역 폭설이다. 2005년 정읍엔 겨울 동안 236.8cm가 내려 광주기상청이 기상 관측을 시작한 후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다. 하루 사이에 46cm가 쏟아진 적도 있다. '눈폭탄'이라는 신조어도 이때 생겼다. 전문가들은 시베리아 대륙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서해를 건너면서 습기를 머금고 이 습성구름이 노령산맥을 지나면서 눈구름으로 활성화 된 것으로 설명한다. 낭만과 추억의 유용한 상징이기는 하지만 눈은 기본적으로 유해하다. 농작물에 치명적인 냉해의 주범일 뿐 아니라 제설작업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폭설은 호남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지만 한편으로 전국에서 눈 산행객을 불러들여 관광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제설차가 도로 위를 오가는 동안 관광버스도 바삐 호남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호남의 이름난 단풍명산, 철쭉명산, 바위명산들이 재빨리 눈꽃명산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산꾼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호남 한복판에 우뚝, 시민들의 안식처
고은 시인은 모악산을 '산이 아닌 어머니'라고 읊었다. '홀로 높지 않고 타지 사람들마저 품에 들여 마치 어머니 품 속 같다'고 썼다. 호남의 곡창지대 한복판에 우뚝 솟아 산자락마다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불선제, 갈마제 같은 수원지를 품고 있다. 이 물줄기들은 각기 수계를 따라 김제평야, 만경평야로 흘러들어 호남들을 넉넉히 적셔준다.
모악산은 예로부터 논산의 신도안(新都安), 영주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왔다. 이 때문에 각종 무속신앙의 본거지가 되었고 한때 80여 개의 신흥종교 단체들이 난립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산의 '기운'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한다. 모악산의 배꼽 위치에 '오리알 터'가 있고 이곳에서 기운이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오리알터는 '올(來)터'의 의미고 올터는 메시아의 재림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금산사에는 미래불인 미륵불이 모셔져 있어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성지(聖地)였다. 바로 옆 동곡마을은 후천개벽을 역설한 강증산의 생가 터가 있고 제비산, 황새마을은 조선시대 혁명아 정여립과 녹두장군 전봉준과 손화중 같은 개혁가들이 야심을 키운 곳이다.
◆호남4경 중의 으뜸, 눈산행지로 인기
사실 모악산은 봄경치가 가장 유명하다. '모악춘경'(母岳春景)은 변산의 하경(夏景), 내장산의 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함께 호남 4경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호남지역의 눈 풍년을 배경 삼아 눈 산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등산로는 들머리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나오지만 일반적으로 관리사무소-대원사-수왕사에서 정상으로 올라 모악정을 거쳐 연리지-금산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인기가 높다.
취재팀은 관리사무소를 들머리로 잡았다. 전주시내에서 10, 20분이면 등산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의 시비(詩碑)를 지나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선녀폭포, 사랑바위가 나온다. 잔설에 덮여 겨우 작은 낙차의 물줄기를 흘릴 뿐이지만 선녀와 나무꾼이 사랑을 나누다 하늘의 노여움을 사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산자락엔 눈이 제법 쌓였다. 수많은 인파들이 눈길을 다져 놓은 덕에 등산로는 잘 확보되어 있다. 빙판길에선 아이젠을 단단히 장착하고 한걸음, 한걸음 착지(着地)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잠시 후에 나타나는 대원사는 보덕화상의 제자 대원 스님이 창건한 사찰. 그러나 이런 사찰 내력보다는 증산교 창시자 증산(甑山) 강일순이 도를 깨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대원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급경사의 시작이다. 눈길 사면은 특히 체력소모가 크다. 종아리가 뻐근해질 즈음 수왕사가 나타난다. 절이라기보다는 아담한 민가에 가깝다. 이 절은 '송죽오곡주'로 유명한 사찰이다.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 국화 등 각종 한약재와 솔잎, 대잎 등을 첨가한 제조비법이 4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호남의 명주 산지이지만 정작 등산객들의 갈증을 달래주는 건 대원사 뒤편 안부에서 파는 막걸리. 말통 막걸리를 큰 대접에 콸콸 따라주고는 천원을 받는다. 안주는 멸치와 풋고추에 된장 약간. 고갯길을 올려치느라 바짝 목이 타던 때에 술 한 잔은 더할 수 없는 청량제다. 막걸리 한잔에 힘을 얻어 다시 고갯길을 오르면 무제봉. 이름답게 일망무제로 조망을 펼쳐놓았다. 조선 시대에는 날이 가물 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젠 능선길, 하얗게 펼쳐진 호남평야를 바라보며 정상으로 향한다.
◆대둔산, 덕유산 등 호남 명산 한눈에
어느덧 중계탑 사이로 정상 표지판이 일행을 맞는다. 중계탑 철골엔 하얀 서리가 날선 검처럼 내려앉고 발밑으론 호남의 산군들이 스카이라인을 펼쳤다. 바로 눈앞에서 화율봉-북봉-매봉을 연결하는 모악기맥이 근육질 능선을 뽐내고 멀리 대둔산, 덕유산, 만덕산이 사방으로 산너울을 펼쳤다. 마음껏 경관을 즐기는 호사는 이내 세찬 북풍이 거둬가 버렸다.
일행은 금산사로 향하는 하산 길로 접어든다. 소나무숲 사이로 한적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등산객 왕래가 뜸한 길, 눈은 맘껏 몸집을 키웠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에 서둘러 스패츠를 착용한다.
금산사 못 미쳐 '연리지'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보통 연리지 현상은 작은 나무에서 보이는데 여기는 제법 큰 키에 아름드리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리지는 한쪽 나무가 수명을 다하면 다른 쪽에서 양분을 보내 살려낸다고 하니 단순한 식물적 결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임도를 따라 20여 분쯤 내려온다. 작은 부도밭을 지나자 금산사가 나타났다. 모악산의 혈(穴)자리에 자리 잡은 금산사는 산의 중심이자 역사의 산실이다. 경내에는 웅장한 규모의 미륵전이 우뚝 서있다. 이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업멸하고 56억7천만년 후에 중생을 제도(濟度)하러 온다고 한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의 비극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말년에 넷째 아들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던 견훤은 장남 신검(神劍)의 분노를 사 미륵전에 유폐되고 만다. 또 후백제의 복심과 도침은 이 절을 무대로 마지막 부흥운동의 기치를 높이기도 했다.
견훤, 복심, 도침, 정여립, 전봉준, 강증산. 그들의 싸움은 치열했고 희생이 따랐다. 이런 전쟁의 정당성과 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모악산은 언제나 약자 편이었고 민중들과 운명을 함께했다. 고은 시인의 시비(詩碑)처럼 산이 아닌 어머니로서.
◆호남고속도로 전주IC → 전주시내(전북도청 앞) → 순창방면 27번 국도 → 원기리 구이중학교 앞 40m 지나면 모악산 입구 진입로.
◆고궁(전주시 덕진동, 063-251-3212)=전주비빔밥. 모악산가든(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063-222-8377)=오리로스구이, 토종닭, 산채비빔밥. 소라네집(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063-221-1999)=보리밥, 청국장, 순두부백반.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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