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감사의 표현

입력 2011-02-10 07:48:01

설이 되면 빠뜨리지 않고 꼭 하는 나만의 행사가 있다. 영남 지역 여러 종가댁의 종손과 종부, 후손들에게 작은 선물과 연하장을 보내는 일이다. 이것은 7년 전부터 시작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 온 일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셨던 어른들께 전하는 나만의 감사의 표현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위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새롭다. 석사와 박사논문 주제를 제례연구로 정했기 때문에 부득이 오후 6시부터 새벽 5시까지 종가댁에 머무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손님맞이와 제수 마련에 바쁜데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위해 끊임없는 질문과 사진 작업으로 종가댁의 사당, 정침, 안채를 드나드는 나를 싫은 내색 않고 따뜻이 보살펴주셨던 종손과 종부 등 종가댁 어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성주 한강 정구 종가, 경주 양동마을의 회재 이언적 종가는 한겨울에 불천위제례가 있어 제례를 마치고는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위에 떨었다. 그때 종부와 종손은 군불을 땐 따뜻한 방 한 칸을 선뜻 내어주고 음복은 필히 하고 가야 한다며 뜨거운 탕국과 음식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래주었다. 차종손의 관례복식을 손으로 직접 수를 놓아 준비하고 관례행사에 참여하여 가정의례 참고자료로 활용하라는 경주 손소 종부의 깊은 배려심은 잊을 수 없다. 고령의 김종직 종가 종손은 일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면을 꼬집었는데 자료가 필요할 때만 종가댁을 들락거리고 이후에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셨다. 안동 농암 이현보 종가댁은 불천위제례를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날에 지내는데, 종부가 준비해준 수박과 옥수수의 맛은 종가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추억으로 남아있고 현풍의 김굉필 종가의 종손은 구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신다.

종택을 지켜나가는 종가댁의 종손과 종부들은 조상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공경, 책임감을 지니고 평생을 살아가고 계신다.

종가댁의 제례에 참여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상은 후손에게 '뿌리의식'과 함께 은혜를 입으면 보답할 것을 생각하며 근본을 잊지 말라는 뜻의 '보본반시'의 정신을 일깨워준다.

편리하고 쉬운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제례문화가 계승·보존되려면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전통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므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잘 살려 재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김길령<대구세계차문화축제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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