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역사스페셜' 10일 오후 10시
1657년 4월 8일 한 조선인이 일본 영주를 따라 할복 자결했다. 조선인 포로가 할복을 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1593년 진주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군, 관, 민 7만 명을 학살했고 경남 내륙지역까지 진출했다. 경남 산청에 살고 있던 홍호연은 피란 도중 가족들과 흩어졌고 일본군에 붙잡혀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열 살이었다.
10일 오후 10시 방영되는 KBS1 TV '역사스페셜-소년 포로, 400년 만의 귀향' 편에서는 조선인 포로로 일본에 건너간 사람이 어떤 이유로 할복하게 됐는지, 그가 지켜려고 한 것은 무엇인지 추적한다. 일본에 끌려간 홍호연은 나카노진우에몬(中野左衛門)에게 맡겨졌고, 일본 무사도의 교과서라 불리는 '하가쿠레'의 모델이 된 전설적 사무라이였다. 그는 꾸준히 정진해 '혹부리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구축했고, 문필가로 성공했다.
60년을 사무라이로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않았던 홍호연은 70세의 나이에 귀향을 시도한다. 그러나 영주의 만류로 귀국이 좌절되자 자신의 지위와 봉록을 자손들에게 상속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6년 후 영주가 사망하자 76세의 홍호연은 그를 따라 할복 자결한다. 할복으로 충성심을 보여주었고, 조선 포로의 후예인 자손들에게 사회적 입지를 부여해 주었던 것이다.
홍호연의 12대손 고우 요시로(洪悅郞)가 그의 유품을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홍호연의 사연은 세상에 알려졌고 그의 유작들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의 후손들도 한국에 와서 경남 산청의 남양 홍씨 일가와 상봉했다. 홍호연이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지 417년 만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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