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어느 추운 겨울날, 이젤과 화구 가방만 챙겨 동대구역에 내렸고, 경산 근처에 하숙집을 구하고 대구 시내에 화실까지 마련했다. 처음엔 시골 근처의 창고라도 구해서 화가와 조각가 지망생과 공동생활을 하는 멋진 작가를 꿈꿨으나,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그건 상상에 불과했다.
80년대 학번들은 기억할 것이다. 매캐한 최루탄 가스 냄새 사이로 꽃은 피고 봄도 온다는 것을. 늦깎이로 동생 같은 화우들과 수업을 하고 야외 스케치를 다니며 실기실에서 밤샘도 했다. '항상 서로 사랑하고 식사를 같이합시다'라는 구호 아닌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 겨울 나뭇가지에 걸린 까만 비닐봉지처럼 미래는 불안하지만 라면 사먹을 돈으로 소주 사먹고 비틀비틀거리며 미대 뒤의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지껄이곤 했다. 한 달 생활비의 반을 그림 재료 사는 데 쓰고 나머지로 술 먹고 생활비 쓰며 학교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한국 현대미술의 발상지라고들 하는 대구에서 본격적인 화가 수업을 시작했다. 정처없이 떠도는 보헤미안처럼 아련한 기억 속에 연 첫 개인전이 생각난다. 추상과 구상이 섞인 페인팅 작업이 천장 높은 화랑 벽에 걸리고 간단한 오픈상이 차려지자 자취생 후배들이 왕창 몰려오고 벌써 위대한 화가가 된 양 괜히 기분이 좋아지던 시절, 그림을 이렇게 그려도 되냐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씩씩하게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돌아보니 10년이 후딱 갔다. 1990년에 뉴욕을 다녀오고 도판으로 보던 그림들을 뉴욕의 미술관에서 거의 다 본 듯하다. 세계적인 대가의 작업들은 오히려 덤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성주 수륜에서의 작업실 생활이 시작됐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자연 속에서 계절 감각을 익혔다. 꽃은 어떻게 피어날까. 봄바람이 불어서 피어나는 게 아닐까. 대기는 차가우나 살랑살랑 부는 따스한 봄바람은 나무를 어루만졌으리라.
시골생활이 7, 8년 지나서야 나는 생각으로만 그리던 그림을 단순 소박한 내 주위 일상의 산물로 바꿨다. 그림은 무엇인가? 호박과 칸나는 무엇을 상징하나? 나의 삶과 예술은 일치하는가? 텃밭에 상추, 쑥갓, 호박, 칸나를 심고 피라미 잡고 물장구치고 그림을 그리던 시절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늦가을에 배추를 심은 적이 있었다. 쌈을 싸먹을 정도의 작은 배추지만 겨울이 왔고, 비닐을 덮어서 얼지 않도록 하였다. 어느새 봄이 오고 비닐을 걷어내고 외출을 한 뒤, 집을 며칠 비웠다. 그리고 집에 와보니 아! 마당에 온통 노란 배추꽃이 피어서 벌들이 앵앵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황홀함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로움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는 그것을 내 작업에 담고자 하였다.
성주에서 대구로 볼일 보러 나올 때 꼭 들러서 선배와 낮술 먹던 장소가 기억난다. 선배 작업실 근처의 허름한 술집에서였으나 인정 많은 주인 아주머니의 토속적인 밑반찬이 일품이었다. 대구에서 작품활동은 꾸준하게 하였다. 거침없이 그룹 전시회에 뛰어들고 개인전을 하던 시절 술도 많이 먹어서 오십을 못 넘기겠다는 친구들이 벌써 나이 육십을 바라본다. 화가는 육십부터라고 하는 옛말에 순응하여 이제 그림을 약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다. 지금은 대구에도 나의 팬들이 생겼다. '정걱모'라고, 정태경 걱정하는 모임인데 평소에는 늘 걱정만 하다가 결정적인 찬스에 아티스트를 도우는 멋쟁이들 말이다. 회원들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이건 비밀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회원들을 잘 모른다. 최근에는 새로운 화랑들이 하나 둘 더 생기고 서로 반목하던 작가들도 자기 작업하기에 바쁘고 그림도 조금씩 팔리기 시작하며 대구를 떠난 몇몇의 작가는 서울에서 인기 있는 작가가 되기도 하고 형편도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대구에서 작품 위주로 살면서 활동하는 작가도 늘어나고 다른 도시의 화랑주들이 대구작가를 주목하기도 한다.
대구시립미술관이 5월에 개관을 하고 이우환 미술관도 만든다고 한다. 젊은 작가들에게도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고 또 다른 창작발전소가 계획된다. 미소금융처럼 화가신용협동조합이라도 생기고 기업에서 메세나 운동을 활발히 하고, 화랑마다 전속작가제를 두어 전속작가가 늘어나면 많은 작가들이 대구로 몰려올 것이다. 어느 도시보다 예술자원이 많은 대구여, 이것이 힘이고 재산이다. 대구의 사람들이 조금만 더 예술에 관심이 높아지면 대구는 예술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술의 도시 대구여 무엇이 두려운가? 공격적 경영으로 예술가와 함께 일어서라!
정태경(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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